만선생~ 2025. 2. 2. 03:58

외할머니 유품인 다듬이돌.
사연이 많다.
부안에 살던 외할머니가 김제로 이사오실 때 소달구지 두 대로 짐을 실었는데
소들이 힘들어해 짐을 길에 많이 버렸다고 한다.
싣고 온 짐들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모가 다 불태워 없앴다.
옛날 거 싫다면서.
세월이 지나 이모님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셨다.
다듬이돌은 불에 탈 수도 없고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외할머니가 부안을 떠나 터잡은 김제역 부근의 소라단은 가난한 동네여서 우리만이

다듬이돌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은 옷감을 손질할 때면 으례 우리집으로 와 방망이질을 하였다.
뜻하지 않게 동네 사랑방이 된 것이다.
내가 다듬잇돌을 챙긴 것은 200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집은 다른사람 명의로 넘어가 짐을 챙겨야는데 가져올만한 물건은 다듬이돌이 유일했다.
생전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귀한돌로 잘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듬이돌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100년이 됐을지 200년이 됐을지 알 수 없다.
외할머니는 물론 그 윗대 되시는 할머니들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옷감을 손질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쓸모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이 돌을 바라볼 때마다 여인네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소달구지에 꼭 실어야만 했던 물건.
달구지를 끌던 소는 더해진 다듬이돌의 무게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난 이 이돌을 들 때면 용을 쓴다.
거실한 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있는 돌.
이제 더이상 방망이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여름날 가끔 다듬이돌을 베고 눕는데 그 때마다
외할머니의 꾸지람 소리가 들린다.

"녀석아 다듬이돌을 베고 자면 입이 돌아가는 게야"

2018.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