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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없어 놀고 있다는 말

by 만선생~ 2025. 6. 13.
일이 없어 놀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논다는 것은 돈을 못번다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돈을 쌓아두고 있지않은 이상 일이 없어 논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구라도 실업자가 넘쳐나는 나라에서 살고싶진 않을 것이다.
직업 분류 상 작가는 실업자군으로 분류된다.
일정 정도 수익을 올리며 사는 작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동료작가인 h가 말하길 일거리가 없어 힘들다고 한다.
후배작가인 y도 손가락을 빨고 산단다.
둘 다 누군가 작품을 의뢰해 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당연지사. 둘 다 놀고 있다.
하루종일 드라마와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금쪽같은 시간을 보낸다.
작가란 뭘까?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자다.
누가 시키지않아도 스스로 하는 자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스스로 그릴거리를 찾아 화폭에 옮겼다. .
누군가에게 작품 의뢰를 받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강제성이 주어져 일을 안할 수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작업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성베드로 성당(?)의 천정벽화와 허영만의 오!한강은 의뢰를 받아 탄생했다.
소위 명작라 일컫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의뢰를 받아 만들어졌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예술세계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된다.
잘나가는 사람에게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안나가는 사람에겐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실업 상태에서
일반 사회인이라면 구직 활동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해야할까?
스스로 움직여야한다.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된다.
만화가라면 공모전에 작품을 내거나 연재를 따내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야한다.
이 것이 일반 사회인과 창작자의 다른 점이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 참 많이 놀았다.
놀고싶어 논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작품 의뢰를 해오지않았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고흐가 그랬듯이 나 역시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야했다.
하지만 도무지 찾아지지도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후배작가 h와 동료작사 y의 모습은 과거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이따금 전화 통화를 하면 빠지지 않고 하는 말씀이 있다.
"일거리는 있냐?"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있냐는 걱정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고 또 서운하다.
마치 사업체에서 오더를 따듯 일거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를 규정하는 거다.
"작업은 잘되냐?"라고 물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일생 가족의 생존 하나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께 이같은 물음은 무리다.
사람은 밥을 먹고사는 존재다.
하지만 밥만으로 사는 건 아니다.
도달하고픈 꿈이 있고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
때론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다.
내게 만화는 일생동안 붙들고 가야할 아름다운 꿈이다.
그래서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다는 동료작가와 후배작가의 말은 참으로 슬프다.
둘 다 일거리가 없어 놀고있다는 말대신 이런 말을 했어야 한다.
'일거리가 없어 자기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물론 이 말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202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