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권샘25 하오리 (はおり) 하오리 (はおり)권샘께서 한국에 오며 하오리 한 벌을 주었다.교토에 있는 헌옷 가게에서 샀단다.옷이 무릎까지 왔다.허리는 천으로 된 끈으로 묶었다.일본 영화나 만화에서 보는 옷이었다.검색을 해보니 기모노의 한 종류로 방한으로 입는 남녀공용 겉옷이라고 나온다.쓰기는 하오리 (はおり) 우직(羽織)이라 한다.신기한 마음에 집에서 한 번 입어보았는데 그 때 뿐이었다.다시 입을 일이 없었다.그렇게 하오리는 내내 옷장 속에 있었다.몇 년은 잠들어 있었나보다.요사이 날이 추워져 집에서 입을 옷을 찾았다.생각하니 편하게 입던 조끼가 작년 겨울 난로불에 그을려 버렸던 것이었다.그래도 입을 옷이 있겠지 하며 찾았다.낭패였다.아무리 뒤져도 마땅한 옷이 나오지 않는 거다.그러다 눈에 띈 것이 하오리다.별 생각없이 한 번 입어.. 2024. 12. 4. 권샘이 읽던 책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권숯돌 작가가 읽었다는 책들이 있다.조지오웰의 >과 채만식의 > 박경리의 >이다.말하기를 작품이 모두 좋단다.나는 이들 소설 내용이 궁금해 >을 사서 읽었다.>는 사놓고 읽지를 않았다.>은 기회가 닿으면 읽어야지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권작가님은 일본에서 25년을 살았는데 일본 소설과 일본 영화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일본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대신 나의 부탁으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일본 만화들을 공수해주었다.시라토산페이의 >과 츠게요시하루의 > 데즈카 오사무의 단편집 그리고 사쿠라 모모코의 > 등이다.이에 대한 답으로 난 백석시집과 김소월시집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물론 일본어를 모르는 난 일본 만화를 읽지 못하고 그림만 본다. 2024. 11. 17. 권숯돌 작가 이야기 강진에 있는 권숯돌 작가 집에 잠시 머무르며 함께 전주에 있는후배 황경택 작가집을 찾아갔다.황경택 작가가 권숯돌 작가를 보며 깜짝 놀랐다.남자 작가인 줄 알았더니 여자였던 것이다.내가 권숯돌 작가와 함께 가겠다는 말 외엔 어떤 정보도 말하지 않는 탓이다.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금세 이야기 꽃을 피웠다.어제 박재동 갤러리에서 전시 오픈을 하였다.만화가 김광성 선생님이 오셔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선생님이 권숯돌이 누구냐고 물었다.선생님은 두 번 놀랐다.여자 작가라서 놀라고 또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에 놀라셨다.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남자 작가로 생각을 한다.권샘이 필명을 어릴 때 별명인 숯돌로 하겠다고 해서 별로라 생각했다.본명인 권유선 아니면 아명인 권내영이 좋았다.유서깊은 양반집 딸 같은 권내영이 나는 맘에.. 2024. 9. 3. 권샘 꿈을 꾸다 《의병장 희순》과 《진주성》 작업을 함께 했던 권숯돌 작가 꿈을 꾸었다.(이하 권샘)지금까지 꾼 권샘 꿈 가운데 가장 생생한 꿈이다.꿈에서 나는 놀랍게도 권샘이 살아있단 소식을 들었다.또 믿기지 않게도 권샘이 곧 우리집에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 했다.손님을 맞기엔 집이 너무나 지저분해서다.그러나 미처 물건을 다 정리하기 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어보니 권샘이 서 있었고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겁게 껴안았다.죽은 줄로 알았던 사람이 돌아온 내 인생에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그 뒤로 나는 권샘을 만난 기쁨에 취해 무엇인가를 했다.평소엔 상상도 할 수없는 스케일이 큰 일들이었다.모든 것이 잘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단 사실을 .. 2024. 8. 17. 권샘 이야기 >과 > 스토리를 쓴 권숯돌 작가님 이야기.(내게는 본명인 권유선이 훨씬 더 익숙하다.)권샘이 일본서 생활할 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한페이지 8컷에 담아 그리곤 했다.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만화를 단 한번도 그려보지 않은 사람치고는 원고가 괜찮았다.데셍력이 한참 모자라고 펜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데 나는 이 점이 오히려 더 좋았다.기성에 물들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랄까.여느 작가들이 기존 그림을 따라그리며 성장하다보니 다 거기서 거긴데 권샘은 달랐다.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않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내가 보기에 권샘이 꾸준히 원고에 만들어 일본 만화 잡지사에 투고를 하면 실릴 것도 같았다.페이지가 많으면 경천동지할만큼 재밌지 않고선 싣지를 않는다.하지만 몇페이지 정도는 부담이 없다.지면을 내.. 2024. 7. 16. 권샘 그리기 "의병장 희순"과 "1592 진주성" 스토리를 쓴 권숯돌 작가. (본명 권유선)어느덧 세상을 떠난지 100일이 되었다.49일도 아닌 100일.100일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그냥 후배의 권유에 따라 저녁 향을 피우며 술 한 잔 올릴 계획이다.술은 뭐가 좋을까?생전에 좋아하던 술을 올려야는데...그림은 권숯돌 작가와 닮지를 않았다.실물을 잘 못 그린다.캐리커처 역시...나는 만화화 된 그림만 그릴 줄 아는 만화가다. 2024.5.5 2024. 6. 5. 100일 (2) 박향미 작가님께서 배달의 민족을 통해 딸기쉐이크와 커피 그리고 빵들을 보내 주셨다.덕분에 상이 가득하다.빈 공간이 없다."권샘 맛있게 드세요.결국 내 뱃속에 들어가 당지수를 높이겠지만요."이렇게 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다보니 기분이 묘하다.권샘이 홀연히 나타나 "정샘"하며 부를 것 같다.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제사를 지냈고 삽십대 후반부터는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모두 가족과 함께였다.할머니 또는 아버지가 나타나리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관례에 따라 제사를 지낼 뿐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아마 나 혼자여서인지도 모른다.만약 권샘이 나타나면 무섭기보다는 무척 반가울 것 같다.그리고 술을 권할테다."권샘 >생각보다 안 팔리네요.자고 일어나면 뭔가 대단한일이 일어날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2024. 6. 5. 100일 (1) 100일권숯돌 작가 세상 떠난지 100일.향을 피우며 술 한 잔 올렸다.생전에 샘이 빚은 도예 작품과 샘이 쓰고 그린 책들과 함께.죽은 뒤의 세상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오래된 관습은 그게 아니다.최소한의 의례를 해야 죽은 이가 위로를 받는다고 믿는다.또 만에 하나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서운해 할 것인가!하여 어지럽기 그지없던 방도 조금 치우고 옷도 정갈한 것으로 갈아 입었다.권샘은 딸기를 좋아했다.헌데 마트에 딸기가 없다.할 수없이 평소 비싸서 잘 사먹는지 않는 포도를 샀다.진열을 하니 권샘이 그린 포도 그림과 잘 어울린다.딸기잼은 권샘의 동갑내기 친구인 성현규 샘이 보내준 것이다.딸기 원액이 70% 유기농 설탕이 30%라니 안심하고 드시라.아마 100일이 다가온다고 연락했으면 딸기를 한 상자 보.. 2024. 6. 5. 권샘 책장 정리를 하다가 "세습사회"란 책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교사이신 심규한 선생의 사회 비평 에세이집이다.덕분에 어쩔 수없이 또 권샘 생각을 하게 되었다.왜냐면 책의 여는글을 권샘이 썼기 때문이다.심규한 선생이 권샘에게 서문을 부탁해 썼다고 한다.분량은 일곱 쪽.남의 책에 쓴 서문치고는 제법 길다.어쩌면 민폐가 아닐까 싶기도하다. .한데 읽다보면 절로 빠져든다.한 사람의 결이 온전히 느껴진다.자신의 지식을 뽐내지않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것이참 좋다.지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와 위기철 선생이 쓴 아홉살 인생의 앞부분 그리고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온달전은 내가 특별히 좋아해 여러번 읽었다.마찬가지로 권샘이 쓴 "세습사회"의 여는글도 한 번을 더 읽었다.나는 언젠가 권샘에게.. 2024. 3. 2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