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6 캠페이지에서 군 생활 30개월 가운데 춘천 캠페이지에서 1년 넘게 근무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미식축구 댈래스 카우보이의 치어리더 팀이 공연했을 때다.아마 미 8군 사령부의 초대로 순회공연을 했었던 듯.사진은 제대 무렵 지나가는 미군병사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자했더니 혼쾌히 응해주었다. 2024. 10. 17. 얼굴 명절이라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놀라셨다.너희 형제들 중 니가 가장 늙어보인다고.혼자살아 고생이 많아 그런 것 같다고.그러면서 명절이 끝난 뒤 아이크림이란 걸 한 보따리 보내주셨다.하지만 잊어먹고 잘 바르지 않는다.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바를 뿐이다. 지금까지 산에 갈 때도 썬크림 같은 걸 바르지 않았다.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노화가 빨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산을 올랐다. 아니 피부노화 따윈 나에겐 예외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이에 비해 피부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살았으니. 그런데 오늘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피부노화가 빨라질 수밖에 없구나 싶다. 십대 시절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오십대 중후반. 지나온 세월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십대 시절.. 2024. 10. 15. 스물 한 살. 친구가 찍어준 사진 어제 친구 녀석 이야기를 올렸는데 녀석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진을 찍으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망을 가고 말았다.구한말 사진기에 귀신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 도망가는 사람은 있었어도 현대에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도망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녀석은 눈이 나쁘지 않음에도 안경을 쓰고 아이라인을 그린 뒤 머리를 최대한 앞으로 내려 얼굴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얼굴만이 아니다.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늘 연기를 피워 올리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뇌신경계통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했다.21살.군입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녀석과 사직공원을 함께 간적이 있다.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안나는데 서울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마침 누군가에게 빌린 카메라가 있어.. 2024. 10. 12. 고등학교 시절의 나 고등학교 시절의 나.이런 시절이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기분 전환용으로 올려봄. 2024. 9. 26. 이십대 지리멸렬했던 나의 이십대. 돌아보니 풋풋한 나이다. 2021.8.30 2024. 8. 30. 내 사진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하루는 후배 작업실에 갔더니 후배가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디지털 카메라다.필림을 인화하지 않고 컴퓨터에 바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신기했다.필름값이 들지 않는 카메라라니...문명의 이기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후배에게 멋적어 하며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컴퓨터 화면을 보니 어두 컴컴한 반지하 작업실 분위기가 잘 살아나 있었다.얼마되지 않는 젊은 날의 사진이다.주머니가 참으로 가볍던 시절...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모르겠다.2021.8.2 2024. 8. 3. 삼십대 초반 1군살 하나 없던 삼십대 초반의 사진.이런 시절이 있었나싶다.아래는 함께 일하던 필리핀 노동자 엘리.2년짜리 취업 비자를 끊고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고 계속 일했다.당연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민예총에서 발간하는 민족 21에 '엘리이야기'란제목으로 두 쪽짜리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풀네임을 물어보니‘엘리세오 그레그리오 카이비간 주니어'(ELISEO GREGORIO CAIBIGAN JUNIOR)라고 말한다.카톨릭식 이름이다.내가 언젠가 정윤선이 부른 '아들'이란 노래를 흥얼거리자이거 자기나라 노래라며 반가워했다.타칼로어로 아들은 아낙이라며.아낙은 빌보드 챠트에 오를만큼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북미대륙은 물론 공산사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불렸다.엘리는 타칼로어로 말하지만 영어도 곧잘 했다.필.. 2024. 7. 12. 작업 중 한 컷 작업 중 한 컷.은둔자 포스다.염색하는 것도 면도하는 것도 잊은...내일은 모처럼 차를 타고 49키로 떨어진 도시로 갈 예정이다.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혀보리라.한국 나이 쉬흔 둘.50 이전의 삶은 대체로 우울했지만 50 이후의 삶은 달라지고 있다.누릴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재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작은 재능이지만 포기하지않고 여기까지 온 내가 자랑스럽다.앞으로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보면 내가 간절히 원했던 어느 지점에도달하리라. 2019.7.11 2024. 7. 11. 해주 부용당 해주 부용당 1913년 일본인이 찍은 해주 부용당 사진.기억자형으로 돼있는 누각이 아주 멋지다.크기는 열세칸 정도 되어 보이는데 조선시대 이 정도 누각은 몇 안되는 것 같다.아마도 해주 감영에 딸려있는 건물이지 싶다.부용은 연꽃을 뜻하는 한자어다.연꽃은 자태가 고와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다.진흙속에서도 더렵혀지지가 않아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전국에 부용을 딴 산 이름이 여러개이고 누각도 여러개다.가장 유명한 것은 창덕궁에 있는 부용정이다.규모가 작아서인지 루라 하지 않고 정이라 했다.전남 벌교에 있는 부용산을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부용산'은 너무나 아름답다.한 때 빨치산들이 많이 불렀다 해 금지곡이 되었으나 이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에 곡을 붙였을 뿐이다... 2024. 6. 2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