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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20

외할머니 산소에서 김제 원평 취회로 집강소에서 하룻밤 자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 김제황산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 황산엔 사위인 아버지가 잠들어 있다. 얼마 전 아버지 산소에 들렸었기에 이 곳 먼저 들렀다. 출가외인. 시집을 가면 집안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사이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집을 나가 생사를 모른다. 딸들은 시집을 가 두 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문중에선 묘만 관리할 뿐이다. 명당이 후손을 발복케한다고 믿는 큰형은 친가만 챙기고 외가는 챙기지 않는다. 부계만 조상으로 여긴다. 죽으면 아무 소용없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아들없이 세상을 떠나 서럽다. 누구나 다먹는 제삿밥을 드시지 못하는 거다. 결국 나라도 챙겨야겠다 싶어 김제에 내려오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 2024. 4. 15.
간좌 艮座 간좌 艮座 할아버지 산소에 상석을 세운다하여 없는 살림에 30만원을 내었다. 상석값만 100만원이고 이런저런 비용을 모두 합해 250만원이 들었다 한다. 아버지 자식들과 작은 아버지 자식들이 나누어 돈을 내었다. 상석을 세우는 날 묘소에 가봐야 하나 일때문에 가보질 못했다. 대신 작은형이 보내온 사진을 보았다.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올려놓는 상석(床石). 상석 앞면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이 써있고 옆면엔 아버지를 비롯한 자녀들과 배우자 이름이 쓰여 있다. 열다섯살 세상을 떠난 고모 이름도 있다. 學生 羅州 鄭公 光述 配 蔚山 金氏 賢淑 之墓 艮座 학생 나주 정공 광술 배 울산 김씨 현숙 지묘 간좌 나는 오른 쪽 끝에 艮座간좌라는 작은 글씨가 낯설었다. 배우자의 왼쪽을 뜻하는 부좌(祔左)는 많이 봤어도 .. 2024. 4. 11.
금주성 태평방 1945년 2월. 만주 이민을 떠난 우리가족이 터를 잡은 곳은 금주성 태평방이란 곳이었다. 중국인 지주에 땅을 빌어 논농사를 지었는데 모내기 대신 땅에 직접 씨앗을 뿌리는 직파를 하였다고 한다. 논은 소대신 말이 갈았다. 두 마리의 말이 쟁기를 끌었다. 땅이 얼마나 넓은지 끝도 없었다고 한다. 식량은 일제로부터 배급 받았다. 일본군 트럭을 타고 한시간 쯤 가면 조양에 닿았다. 이곳은 고구려의 주요거점이었고 발해를 멸한 요나라 수도였다. 물론 괴뢰국가인 만주국의 주요도시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요나라의 가장 큰 유적인 전탑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더이상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나도 애써 물으려하지 않았다. 3권까지 출간된 정가네소사의 내용이 거기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24. 3. 22.
가족 관계 상세 증명서 울 엄니 기준으로 된 가족관계상세증명서란 걸 뗐더니 외할머니 이름이 오씨라고만 나온다. 외할아버지 이름은 올라와 있는데 이게 뭔가 싶다. 외할머니 이름은 오연하다. 김제 부안 연동이란 곳에서 시집을 오셔 연동댁이라 불렸다. 동생 이름은 오수갑으로 해방 전에는 면서기를 했고 해방이 된 뒤에는 익산역에서 어떤 직책을 맡아 일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먹고살게 없자 어머니 외삼촌인 오수갑을 찾아가 일자리 좀 알아달라 했더니 모른 채 했다는 것이다. 자연 외삼촌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았다. 그래 할 수 없이 의무병 경력을 살려 무면허의사 노릇을 했다. 워낙 의료 인프라가 안돼 있던 때라 찾는 이가 많았다. 돈을 제법 벌어 동네에서 유일하게 일산 자전거를 타고다녔다. 아버지 전성시대였다. 2023.3.20 2024. 3. 22.
우리집과 5.18 어머니와 큰형이 계신 오산 집으로 돌아와 5. 18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집도 5.18과 동떨어져 있진 않았다. 79년 12월 시골에서 올라와 청량리에 자리잡은 우리 가족은 노점상을 하였다. 큰형과 작은형은 리어카에 오코시(강정)를 팔았고 어머니는 도라지와 머리핀, 아버지는 칫솔을 팔았다. 경찰의 노점상 단속이 심하여 어머니와 아버지는 청량리 경찰서에서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어머니 말씀으론 경찰서에서 주먹밥을 주었고 함께 잡혀온 아주머니들이 하도 시끄럽게 이야기를 해대어 잠을 한숨도 못주무셨다고 한다. 80년 5월 연좌제 걸려 공군사관학교 입학을 못한 큰 형은 장사를 접고 13,14,15 삼일 연속 서울역 광장에 나가 시위 대열에 합류했단다. 뭔지는 잘 모.. 2024. 1. 24.
정가네소사 페이스북 친구 윈디님께서 이런 저런 책들과 함께 정가네소사에 대해 감상을 써주셨다. 페친이신 정용연 작가님의 1,2,3, Humanist, 2012.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리셨다니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손으로 그린 그림과 컴퓨터로 그린 것은 정말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떻게 아냐고?) 역사적 텍스트는 주로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사건을 담는다. 정가네 소사는 역사를 만드들어낸 '사람의 향기'를 담았다. 그 향기는 이야기와 그림과 여백을 통해 오묘히 믹스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한 프레임 프레임에 펜촉으로 그려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은 말풍선 넘어선 그 무엇을 담았고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019.12.25 2023. 12. 26.
정가네소사 서울시민연대 대표인신 전상봉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 페친 정용연 화백의 가족사가 담긴 '정가네 소사'. 친가와 외가 4대에 얽힌 내밀한 가족사를 읽다보니 가슴 한켠이 아린다. 지난 20세기 이땅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형과 누이들의 이야기다. 2015.12.22 2023. 12. 26.
정가네소사 소회 불행히도 아직 나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는 정가네소사를 하룻만에 읽었다는 분들이 많다. 내리 세권을 다 읽었다는 분들도 적지않다. 첫 원고가 실린 뒤 책으로 나오기까지 7년 세월이 걸렸는데 하룻만에 읽었다고 할 때마다 두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고마움과 허탈함이다. 하룻만에 다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몰입해서 읽게 만들었으므로 작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내 만화를 본 사람들이 평하기를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고 한다. 메세지가 무엇이든간에 읽힌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세상엔 읽히지 않게 그리는 만화가가 의외로 많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만화들은 모두 잘읽히는 만화들이어서 세상의 모든 만화가 잘 읽히는 것이라 착각할 뿐. 내가 만화를 그리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가독성이다. 한 컷을 폼나게 잘그리는 것도 .. 2023. 12. 21.
파주 지혜의 숲에서 파주 출판 단지 안에 있는 북카페 ‘지혜의 숲’. 안중찬 선생 덕에 처음으로 가봤다. 어마어마한 책장 규모에 놀라고 더불어 책들이 손에 닿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읽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인테리어에 방점이 찍혀있는 책장들. 참 인상적이다. 안중찬 선생이 올린 포스팅에 어느 분께서 ‘지혜의 늪’이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기도... 사진은 파주 지혜의 숲에서 안중찬 선생과 함께 2016.12.19 2023.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