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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

세이코 시계

by 만선생~ 2025. 1. 7.
 
 
 
 
 
 
 
 
세이코 시계
동생은 기억력이 좋다.
그래서 까마득한 과거의 일을 마치 오늘 일인양 말하곤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생은 세이코 시계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이 다섯살이던 1974년.
시내에 나갔다 돌아온 부모님 손엔 어떤 물건이 들려 있었다.
바로 세이코 시계였다.
동생은 내겐 전혀 기억이 없는 부모님이 시계의 포장지를 벗기던 순간을 이야기 했다.
이른바 언박싱이다.
시계는 안방에 있는 벽위로 걸렸다.
시계엔 시계추란 것이 있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내었다.
딕 딕 딕 딕 딕 딕
소리는 무한반복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다른 소리를 냈다.
뎅~
시침이 한시 방향을 가리키면 한 번 두시 방향을 가리키면 두 번 열시 방향을 가리키면 열번
\12시 방향을 열두번 소리를 냈다.
나와 동생은 세이코 시계를 보며 시간 보는 법을 배웠다.
시계를 보며 학교에 갔고 시계를 보며 잠이 들었다.
시계추는 몇 달에 한 번씩 멈추어 섰다.
"시계가 배가 고픈가보다. 밥좀 주라."
부모님 말씀이 떨어지면 형제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태엽을 감았다.
드르럭 드르럭...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우리와 함께했던 세이코 시계.
시계는 1979년 겨울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도 함께했다.
재산목록 1호로 반드시 가져와야 했다.
시계는 밀레니엄인 2000년 무렵 멈추어섰다.
태엽을 감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로서 수명을 다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식구는 시계를 버리지 않았다.
시계는 어머니와 큰형 내외가 사는 거실을 계속 지켰다.
2005년 7월 아버지가 7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다.
어머니와 큰형수 그리고 동생이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계소리가 났다.
뎅 뎅 뎅
몇년 간 작동을 멈추었던 시계가 종을 치는 것이었다.
횟수는 아홉번.
이후 시계는 더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금까지도.
식구들은 불가사의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는 어떻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소리를 냈던 것일까?
초자연적 현상을 전혀 믿지않는 나로서도 신기할 뿐이다.
기능을 멈춘 시계는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확실한 건 우리 형제들이 눈을 감기 전까지는 절대 버리지 않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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