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상량문
1960년대 초 아버지는 무면허 의사 노릇을 하여 돈을 제법 벌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일산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가 아버지였다.
국민학교 교사인 김선생 집에 세들어살던 아버지는 집지을 결심을 하게 되는데
1963년도 일이다.
큰형이 네살 누나가 두살이었다.
방이 세 개이고 다락이 있으며 대청마루에 부엌이 딸려있는 집이다.
집을 지은뒤 이듬해 작은 형이 태어나고 4년 뒤 내가 태어났다.
언젠가 목수일을 하는 친구 유병윤에게 집사진을 보여주니 솜씨있는
목수가 지었단다.
생가를 리모델링해 살아볼까 싶었지만 어느날 가보니 집이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복원이 불가능했다.
새해 첫날 큰형 집에서 어머니와 <<백정 동록개>>의 무대가 되는 김제 집강소
이야기를 하였다.
1882년 집지을 때 쓴 상량문이 남아있어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말씀을 드렸다.
"우리집도 상량문 썼다.
느그 큰할아버지가 쓰셨어"
"예?"
뜻밖의 대답에 아버지가 지은집이냐 물으니 그렇단다.
집을 지을 때 아버지의 큰아버지인 큰할아버지를 모셨단다.
조카가 집을 지으니 멀리 장성에서 김제까지 와주신 것이었다.
한문으로 썼는데 셋집 주인인 김선생이 아주 잘쓴 글씨라 말하더란 것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로서 여섯 아들을 낳으셨다.
아들 모두 한학을 가르치셨는데 아마도 큰 할아버지 필력이 가장 좋으셨던 듯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량문 내용은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쓰는 상량문 형식을 따랐을 것이다.
큰형이 말하길 목수 이름은 안명수로서 솜씨가 좋아 일대에 있는 집은
다 그가 지었다고 한다.
집은 1971년 잠실집을 지으면서 쌀 아홉가마를 받고 팔았으니 우리 가족이
8년 정도 산 셈이다.
아래는 김제 원평집강소에 쓰여있는 상량문이다.
坤坐 龍盤
光緖捌年壬午三月二十二日入柱同月
二十六日辰時上樑
應天上之五光 備地上之五福
地雖舊基 其業有新
虎跪 艮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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