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빌려온 글

청정관전서 괴력난신 (퍼온 글)

by 만선생~ 2025. 7. 3.
> 고전번역서 > 청장관전서 > 청장관전서 제3권 > 영처문고 1 > 최종정보
청장관전서 제3권 / 영처문고 1(嬰處文稿一) - 기(記)
해인사(海印寺)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사적기(事蹟記)
[DCI]ITKC_BT_0577A_0030_020_0130_2000_001_XML DCI복사 URL복사
보지도인(寶誌道人)은 소량(蕭梁 소연(蕭衍)이 세운 양(梁) 나라)의 불제자(佛弟子)이니 부처에 아첨하던 그 당시에 고승으로 이름났었다. 그가 죽게 되자 답산가(踏山歌) 1편을 내놓고 도가 높은 제자에게 주면서 이르기를,
“내가 입적(入寂)한 뒤에 응당 신라의 명승이 올 것이니 이 답산가를 전하여 주라.”
하였다.
과연 수년 후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대사가 지공(誌公)의 풍문을 듣고 신라에서 북으로 와 지공을 뵈려 하였다. 그러나 지공은 이미 입적한 뒤라 그 제자가 눈물을 흘려 슬퍼하면서 간수하여 두었던 답산가를 공손히 주고 지공의 계언(戒言)도 전하였다. 두 대사는 공손히 답산가와 계언을 받들고 눈물을 흘려 슬퍼하였다. 그리고 합장(合掌)하여 지공의 무덤 앞에 서서 3주야에 걸쳐 한결같이 범주(梵呪)와 염불을 부지런히 외었더니 무덤이 열리며 지공이 나타나 이르기를,
“신라 우두산(牛頭山)은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이니, 사찰을 세우면 기이한 응보(應報)가 많을 것이다.”
하였다. 두 대사는 두렵고 공경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두산이란 합주(陜州 지금의 합천(陜川))의 가야산(伽倻山)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나무하는 노인을 만나 사찰을 창건할 만한 곳을 물었더니 노인은 웃으면서 이르기를,
“저쪽으로 두어 언덕을 돌아가면 물이 모여들어 합수되는 곳이 있다. 그 위에는 단단한 기왓장 수만 개가 있는데 왜 그리로 가서 절터를 보지 않는가?”
하였다. 두 대사가 사례하고 나아가 보니 과연 지대가 평평하고 넓으며 단단한 기와가 겹겹으로 쌓여 있었다. 서로 말하기를,
“장소가 있고 기와도 있지만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이 역사를 도울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는 공경히 주문을 외었더니, 서기(瑞氣)가 발산하여 곧장 허공 밖에까지 뻗쳐나갔다.
이때에 애장왕(哀莊王)의 왕후가 등에 종기가 났는데 모든 의약(醫藥)을 다해 보았지만 치료되지 않았다. 이에 명하여 초야(草野)나 암혈(巖穴)에 숨어 있는 기이한 인물이나 기술을 통달한 성인을 구하게 하니, 사명을 띤 관원들이 온 나라에 편답(遍踏)하였다. 이때 사자(使者) 한 사람이 서기(瑞氣)가 가야산 정상에 뻗쳐 있는 것을 보고는 두 대사에게 머리를 조아려 명을 전하고 함께 가기를 청하였다. 대사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전대 속에서 혈색같이 고운 분홍실을 한오라기 전하여 주면서 이르기를,
“이 실의 한 끝을 후원의 배꽃나무에 잡아매고 다른 한 끝은 종기에 접착시켜 놓으면 종기가 바로 나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자는 돌아와서 그대로 시험하였더니 배나무는 말라죽고 종기는 즉시 완치되었다.
애장왕은 이를 은혜로 여겨 사자를 보내어 사례하고 대사의 소원이 무엇인가 물으니, 이는 장차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대사는 사찰을 건립하는 일로써 대답하였다. 왕은 대목(大木)에게 명하여 국가의 예산으로 사찰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에 합주의 이정(里丁)인 이거인(李居仁)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길에서 눈은 셋이고 다리를 절름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거인은 이를 불쌍하게 여겨 길렀는데, 그 강아지는 매일 점심때에 한 끼의 밥만을 먹었으며 주인이 출입할 때면 반드시 몇 리라도 보내고 맞이하였다. 3년 후에 죽자 거인은 슬퍼하여 관(棺)에다가 염습하여 장사하고 제사하기를 사람과 같이하였다. 그런지 2년 뒤에 거인은 아프지도 않고 갑자기 죽었다. 영혼이 경황없이 불가에서 말하는 명부(冥府)라는 곳으로 들어가니, 대문 안에 엄연하게 공복(公服)으로 차린 관원이 있었다. 그는 당을 내려와 다정하게 맞이하여 이르기를,
“우리 주인께서는 어찌하여 오셨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거인이 보니 전연 면식(面識)이 없었으나, 다만 그 눈이 셋이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내가 화액이 있어 인간의 세계에서 모피(毛皮)를 쓰고 있어야 했는데, 다행히 주인의 은혜를 입어 3년이 지난 후 다시 이 벼슬에 봉직되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거인은 사례하고 애원하여 이르기를,
“나는 용렬하니 염왕전(閻王殿) 앞에서 무슨 말로 대답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눈이 셋 달린 사람이 부탁하기를,
“다만 세상에 살아 있었을 때에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보고자 생각하였으나 성사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시오.”
하였다. 거인이 그 말대로 아뢰었더니, 염왕은 크게 기특히 여겨 귀신의 명부에서 삭제하고 석방하도록 명하였다. 눈이 셋 달린 사람은 작별의 인사를 하면서 이르기를,
“세상에 돌아가시면 팔만대장경을 등사하시고 화주(化主)의 권선권(勸善券)에 합주(陜州)의 도장을 찍어 잘 간수하여 두시오. 그렇게 하면 후일에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거인은 살아 돌아와서 그 말대로 하여 간수해 두었다.
이때 애장왕의 귀공주(貴公主) 형제가 함께 천연두를 앓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홀하여 이르기를,
“만일 간수하여 둔 팔만대장경의 권선문을 얻는다면 우리의 병은 나을 것이다.”
하였다. 왕이 명하여 구하게 하였더니, 합주의 원이 거인을 역마로 달려 보내왔다. 거인이 공주를 보니 공주는 땅 속에 있던 눈이 셋 달린 사람의 말을 하여 이르기를,
“작별한 뒤로 평안하십니까?”
하고는 왕에게 말하기를,
“팔만대장경은 저승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염왕께서 이 사람을 석방하여 주신 까닭은 세상에 나와서 이 일을 도모하게 하신 것입니다. 원하건대 왕께서는 이 사람을 도와 성사하소서.”
하고, 거인을 작별하여 이르기를,
“이제부터는 영원히 못 만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곧 병이 나았다.
이때 거제도 바다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를 큰 배가 떠 있고 그 안에는 팔만대장경이 가득하게 실려 있었는데, 모두 금은으로 된 글자이었다. 왕은 온 나라 안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거인과 함께 섬에 가서 간행하고 합주 해인사로 옮기어 보관하도록 명하였다. 해인사는 바로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선생(李先生 저자 이덕무(李德懋) 자신을 가리킨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부자(夫子 공자(孔子))는 일찍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으니 군자가 어찌 괴이한 것을 말할 수 있으랴? 말하는 것도 오히려 옳지 않거든 하물며 서책에 올리는 것이겠는가?”
장화(張華)의《박물지(博物志)》, 간보(干寶)의《수신기(搜神記)》, 왕자년(王子年 자년은 왕 가(王嘉)의 자)의《습유기(拾遺記)》, 단성식(段成式)의《유양잡조(酉陽雜組)》, 소식(蘇軾)의《구지필기(仇池筆記)》 등이 나오면서 괴이한 것을 말한 것이 많이 나왔으니, 이것은 기록 으로 허탄한 데에 빠진 것인데 따라 믿은 것이다.
지금 내가 팔만대장경을 기(記)하는 것은 허황되게 속이는 것을 꾸짖어 유괴(幽怪 어두워 나타나지 않는 괴이한 것)를 말하는 자의 경계로 삼으려는 것이다.
기사년(己巳年) 가을에 선전(宣傳) 종질(從姪) 서빈 낙서(書彬洛瑞)는 쓴다. 15장은 타인의 손을 빌렸다.
[주-D001] 괴력난신(怪力亂神) :
괴이(怪異)ㆍ용력(勇力)ㆍ패란(悖亂)ㆍ귀신(鬼神)을 말하는데, 앞의 세 가지는 정리(正理)가 아니며, 귀신은 학문이 지극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우므로 공자는 평소 여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한다.《論語 述而》
ⓒ 한국고전번역원 | 이종술 (역) | 1978

'빌려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환생​ (빌려온 글)  (3) 2025.08.05
채근담 (퍼옴)  (0) 2025.07.22
소금 3퍼센트가바닷물을 썩지않게 하듯이 (퍼온 글)  (0) 2025.06.18
한글에서 띄어쓰기  (8) 2025.06.16
격언  (0)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