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에서 자고 김제로 내려가는 길.
여산휴게소 못미쳐 문득 여산동헌이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차를 익산 방향으로 돌렸다.
여산은 지금은 익산시에 속한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엔 당당한 1개 군 또는 도호부였다.
동헌 안에 모아놓은 선정비에 부사 아무개 아무개 라는 글씨들이 이를 증명한다.
조선왕조는 형식상 국토 전부가 왕의 소유였다.
발아래 꿈틀대는 미물조차 국왕의 은덕을 입어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백성들을 곁에서 일일이 다스릴 수 없었기에 자신의 대리인을 파견했다.
바로 고을 수령이다.
객사와 함께 관아에서 가장 격을 갖춘 건물이 고을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이다.
관아는 고을마다 있었기 때문에 동헌 또한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유림의 철벽보호로 건드리지 못한 향교와 달리
일제는 관아를 무차별로 파괴하였다.
해방이 된뒤에도 보호를 받지 못했다.
부속건물은 남아있는 예가 겨우 한둘이고 객사와 동헌도 그 수가 손에 꼽을만큼 적다.
익산 나들목을 빠져나와 여산동헌을 찾았을 때 동헌은 잠겨 있었다.
그래서 여산면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직원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동헌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었다.
멀리서 보면 보통의 한옥건물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위용이 느껴진다.
대들보의 크기가 민가의 것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크다.
고을 수령의 권위는 그만큼 크고 무서웠다.
백성들이 관아에 들어서는 일은 묘자리 다툼을 벌이거나 심문당할 때가 전부였다.
담조차 함부로 바라볼 수 없는 곳.
그 무시무시한 공간에 나홀로 둘러보자니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과거의
시간들이 허망했다.
오늘 내가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행위들이 길고긴 시간속에서 보면
참으로 덧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기위해 교환수단인 돈이란 것을 벌어여한다.
오늘 내가 이렇게 한가로이 동헌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얼마간의 교환수단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20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