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마지막 실학자라 불리는 석정 이정직 생가에서 바라본 와룡산.
해발 40미터의 낮은 산으로 저 산너머 우리집이 있었다.
걸어서 50분 거리다.
매천 황현과 이건창 같은 이들과 교류했던 실학자가 우리집 가까이 살고
계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극진가라데의 창시자인 최영의(최배달)
씨와의 인연이다.
최영의씨 부친인 최승현 선생이 석정 이정직의 마지막 제자였다는 것이다.
무면허 의사로 활동했던 아버지는 최승현 선생 집에 드나들며 링겔을
놔주곤 했다.
선생의 아들이자 최영의씨의 형인 최영범씨와는 막역한 사이였다.
언젠가 아버지와 최영범씨를 찾았을 때 최영범씨는
아버지께 연하장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석정 이정직의 학문은 대단히
높았던 것 같다.
남긴 저서만 해도 50권이다.
실사구시의 학문 뿐 아니라 시, 서, 화에 능해 유재 송기면을 비롯한 서예로
이름높은 제자들이 많이 나왔다.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어린날 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와룡역에서 이정직 생가가 있는
요교(여꾸다리)마을로 가던 걸.
어둠이 내려앉은 논에선 반딧물이 하얗게 빛났었다.
어머니께 물어보니 요교마을에 어머니 친구가 시집을 갔었다고 한다.
진작 이런 사연을 알았더라면 정가네소사에 석정 이정직과 제자인
최승현 선생 이야기도 한토막 넣었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조상에 대한 후손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어제 만난 석정 이정직 고손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실재 조상을 기리기 위한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석정 선생이 전북을 넘어 전국으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202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