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용연 동굴 앞에서 부부가 함께 서 있는 사진이었다.
뿐만 아니라 용연 동굴 이모 저모를 담은 사진이 뒤를 이었다.
어디냐 물으니 태백이라고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천연동굴이란다.
입장료는 3500원으로 머리를 다치지 않기 위해 헬멧을 쓴단다.
제주도 용연을 비롯해 용연 호수는 더러 보았는데 용연 동굴은 처음이다.
검색을 해보니 짐작대로 동굴 안에 못이 있었다.
용이 살아갈만큼 깊어 보였다.
태고적 인류와 함께해온 동굴은 전쟁과 관련이 깊다.
일단 전쟁이 나면 피난처로 쓰였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용연 동굴 또한 그랬던 것 같다.
강원도 영월 고씨 동굴을 가봤었는데 그 곳 역시 임진왜란 당시
피난처였다.
제주도에선 민간인 학살이 많았다.
4.3 당시 사람들은 토벌대를 피해 동굴에 숨었다가 숨을 거두었다.
토벌대가 동굴 입구에 연기를 피워 질식해 죽도록 하거나 연기를
참다못해 나오면 바로 총격을 가하였다.
초등학교 때다.
그러니까 당시 국민학교 담임 선생은 어느 날 수업 도중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한국 전쟁 중 황해도 어딘가에서 마을 주민 40명이 인민군을 피해
동굴로 숨었들었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인민군은 동굴 입구에서 마을 주민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쓰러지며 숨을 거두었다.
이를 확인한 인민군은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런데 10명 정도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동굴이 기억자로 돼있어 꺾어진 곳에 숨은 이들에겐 총알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나 강렬하여 수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히
되살아나곤 한다.
내가 가본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굴은 베트남 하롱베이에 있는
승솟동굴이다.
역시 베트남 전쟁 때 베트공들의 비밀 진지로 쓰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베트공들은 어마어마한 깊이의 동굴을 파 생활했다.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저항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발달지원센터 웹툰교실 수업을 마친 뒤 산책삼아 어린이
대공원에 갔었다.
공원 한 쪽에 재현해 놓은 땅굴이 보였다.
박정희 정권 당시 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아래선 심심하면 "남침용 땅굴 발견" 이란 제목의
가사가 대서특필되었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정말이지 저 잔혹하기 그지없는 김일성 괴뢰도당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그 때 발견된 땅굴들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었다.
"목호의 난"을 그리기 위해 제주도를 답사하던 중 나는 동굴을
자주 보았다.
해안에서도 보고 오름에서도 보았다.
일제가 제주도민을 동원해 판 동굴들이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제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동굴
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일제는 제주도 뿐 아니라 오키나와에도 동굴 진지를 구축했다.
폭도 폭이지만 길이가 어마어마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공호다.
이 곳에 전투를 진두지휘할 해군 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잠자는 호랑이의 콧털을 건드린 일본!
전력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미군의 공격을 견디다 못한 해군 사령부는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전원 옥쇄.
동굴엔 그 때 동료를 향해 쏜 총탄 자국이 무수히 많이 남아있다.
전쟁의 광기는 그만큼 무서웠다.
광기의 상징인 그 방공로가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입장료 430엔.
나는 오키나와 여행 기념으로 방공호 입장권을 우표책에 넣어 두었다.
202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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