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대 제대하고 몇년간은 군대 얘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일년 조금 넘게 만화 그리는 선배 집에 세들어 산 적이 있는데 하루는 선배가
군대 얘기 좀 그만 하라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자기 동생이 날마다 군대 얘기를 해 지쳤는데 나까지 그런다고.
그러면서 군대 얘기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불쌍하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군대 얘기 말고는 할 게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국가가 나를 군대가 아닌 유럽이나 미국에 보내주었더라면 더 넓은 세계를
이야기 할 수 있었을텐데...
하긴 다른 이들처럼 군 제대 후 복학해 학교를 다녔거나 직장에 다녔더라면
화제가 군대에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불행은 만화에 있었다.
그 잘난 만화를 그린답시고 골방에서만 지내 다른 경험을 할 수가 없었다.
경험한 세계가 좁으니 시야가 좁고 시야가 좁으니 나올 이야기가 없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그 시간들이 빚은 결과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2
친한 형이 어떤 일로 미얀마에서 한달 반 동안 생활하다 돌아왔다.
나는 미얀마 생활이 궁금해 이것 저것 물었다.
형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온통 미얀마 이야기였다.
나는 차츰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야기 화제를 다른 쪽으로 살짝 돌리면 어느새 형은 다시 미얀마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형에겐 미얀마가 유토피아였다.
여자도 미얀마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이뻤다.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나는 살짝 빈정이 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여자보다 이쁠려고?
내가 생각하는 세계 최고의 미인은 이란 여자였다.
월드컵 축구를 보면 이란 선수들이 가장 잘 생겼다.
잘생긴 선수가 많기로 유명한 스페인도 이란 선수들 옆에 있으면 인물이
한 참 떨어져 보인다.
각종 매체를 통해 본 이란 여자들이 나는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이란 여자 다음은 한국 여자다.
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 여자가 이쁘다.
그리고 동남아 여자는 그닥 이쁘지 않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딜 가나 이쁜 여자는 있기 마련이란 걸 잘 안다.
형에게 외국생활은 처음이었다.
미얀마 얘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는 미얀마를 다녀온지도 꽤 돼서 내가 묻기 전엔 미얀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형은 미얀마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사는 쪽으로 생각한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다.
행동방식과 생각이 미얀마 사람들과 닮아있다.
기회가 되면 형과 함께 미얀마를 여행하고 싶다.
3
셋집 주인이었던 선배가 내 군대 얘기를 더 싫어했던 건
동바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형의 미얀마 얘기를 지루하게 여겼던 건 미얀마를 가보지 못해서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이상을 말하지 못한다.
더 넓은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풍부하다.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해도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으면
이야기의 폭이 넓어진다.
(눈뜨고 일어나니 문득 내 군대시절과 형의 미얀마 얘기가 겹쳐서
그냥 써봤다.)
20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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