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네 소사> (전3권)
페친이기도 한 만화가 정용연님의 작품이다. 순수 창작 만화가 아니라 자신의 집안 이야기다.
흔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이야기를 쓰면 대하소설 뺨치는 소설이 나온다고.
그런데 책을 내지는 못한다.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작업을 하려면 잘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정리할 줄 아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도 가끔 우리 선대의 이야기를 좀 정리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늘 생각만
하고 손을 대지는 못하고 있다.
막상 해보려면 조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길게 시간을 낼 도리가 없다.
그걸 다 해낼 뚝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용연님은 이런 일을 뚝딱 해치웠다.
아니 7년이나 걸렸으니 뚝딱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뚝딱이 아니라 뚝심있게, 끈기를 가지고 해냈다고 해야 한다.
이 만화는 세 권에 달하지만 시대순으로 배열된 장편이 아니다.
에피소드별로 만들어진 연작 단편이다.
친가와 외가의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로부터 누나의 팍팍한 세일즈 이야기까지 백여 년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가족들 이야기 속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 이야기도 몇 가지 나온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이 이야기들 속에서 튀어나온다.
금광 열풍이 불었던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금 방죽에 얽힌 섬뜩한 이야기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으로 연결된다.
6.25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이 일가와 이웃에게 밀어닥친
비극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문득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6.25 때 이야기를 듣고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을 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씀했다.
"우린 한 기 읎다. 대구에 있었잖나. 저짝 멀리서 어쩌다 쿵쿵 소리 나면
그기 포탄 떨어지는 소리다, 그런 말이나 들었제.
사람들이 피난 가야 하나, 우예야 하나 하다가도 떠난 사람도 없었데이. 그기 다다."
그런 이야기는 재미가 없어서 적어서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정용연님의 그림은 독특하다. 만화의 전개방식은 더욱 독특하다.
그림을 살리는 것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지문에 있다.
만화를 보는지 소설을 읽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깔끔한 문장이다.
두 가지는 분리되기 힘들게 딱 들러붙어있다.
<정가네 소사>는 정씨 집안이 겪어온 이야기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굉장한 작품이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좀더 세밀하게 작품을 분석해보고 싶기도 하다.
사족 -
한가지 옥의 티가 있는데, 사실 중요하지는 않다.
귀주대첩에서 수공으로 거란군을 물리쳤다는 게 한 컷 나오는데,
당시에 이런 것을 믿고 있었다는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에 꼭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이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으리라 생각한다.
20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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