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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만화

소원을 담은 그림 민화

by 만선생~ 2025. 11. 13.

 
 
언젠가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민화展’을 보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발길을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 관장으로 생각되는 분이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열심히
설명해줬던 기억이 난다.
안타까운 것은 그린이가 누구인지 알 지 못함이었다.
화가의 사회적 신분이 낮아 감히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전문화가가 아닌 아니 전문화가일지라도 감히 제 이름을
드러내놓고 그릴 수 없었던 그림 민화!
민화는 화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앞서
주문한 이의 요구에 맞추어 그리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화가들 대부분은 가난했다.
행여 주문이라도 받으면 행랑채에 머물며 마냥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루에 그릴 수 있는 걸 이틀, 이틀만에 그릴 수 있는 걸
나흘만에 그리는 식이다.
그 기간만큼은 밥먹는 게 해결되니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화를 처음 보았던 것은 미술교과서를 통해서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서양화와 달리 민화는 사물을 재해석한다.
상상의 공간과 여백의 미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민화 ‘까치와 호랑이’ 에서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다.
마치 내 옆에 앉아있는 친구 같다.
보고 있으면 왠지 정이 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림 민화!
생활 속에서 민화를 처음 보았던 것은 종로거리에서다.
파고다공원이나 세운상가 앞에서 중늙은이가 좌판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참 신기했다.
손님 이름이나 좋아하는 경구를 쓴 뒤 비, 구름, 새, 꽃
등을 그려 놓으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들으니 그런 그림을 ‘혁필화’라 하고 그리는 이를
‘혁필쟁이’라고 하였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서편제”엔 안병경씨가
혁필쟁이로 나와 비디오로 두번 세번 돌려가며 보기도 하였다.
민화를 한 마디로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소원을 비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바램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사히 아이를 낳기 바라고 입학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고 취업을 해
돈을 벌기 바라고 병이 없기를 바란다.
만화를 그리는 나는 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동료작가 서은경이 쓰린 그린 “소원을 담은 그림, 민화”는
이 같은 사람들의 염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민화가 아닌 만화다.
아니 만화로 민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만화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예술 장르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화를 보며 즐긴다.
설령 지금 만화를 즐겨 보지 않더라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은 만화에
흠뻑 빠져 살았으리라.
부모들의 한결 같은 바램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학습만화다.
만화에 학습요소를 넣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약이 쓰니 설탕을 입혀 먹게하는 당의정의 역할이다.
부모의 요구 때문에 봇물처럼 쏟아진 학습만화들 대개는 비슷비슷한
그림에 지식을 전달하기 바쁘다.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식과 작품성을 함께 담보하고 있는 만화는 없는 것일까?
흔치 않지만 그런 만화들이 있다.
길벗 지식교양만화상 대상을 수상한 “소원을 담은 그림,
민화”도 그런 만화 가운데 하나다.
그림부터 전형적인 일본 애니식 캐릭터가 아니다.
인물과 풍경묘사가 서정적이고 따뜻하다.
구성 또한 수미상관을 이루며 읽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작품에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읽다보면 자연스레 민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민화를 사랑하게 된다.
주인공 민조는 소원이 있다.
엄마의 병이 빨리 나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민조는 병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오늘이를 만난다.
오늘이는 한국 신화인 원천강에 나오는 선녀로서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함께 한다.
문헌으로 기록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쉬처럼 민조와 오늘이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원천강에 이르러 신비의 새 봉봉이와 친구가 된다.
봉봉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오간다.
민조는 원하는 소원이 있을 때마다 봉봉이의 도움을 받아
조선시대로 가서 화가인 유랑을 만난다.
유랑은 무명 화가로 민화를 주문받아 생계를 꾸려나간다.
미래에서 온 불청객에 의아해 하지만 사연을 전해듣고
그림을 주곤하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다.
민조와 티격태격 싸우며 정이 들고 헤어질 질 때마다
허전함을 달래지 못하는 유랑.
내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지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책 속에서 유랑이 그린 민화는 아래와 같다.
어변성룡도, 모란도, 책가도, 어해도, 운룡도, 문자도, 십장생도.
하나같이 낙관이 없다.
이름을 전하기 위해 명산의 바위마다 이름을 새긴 사대부들의 행위와
대비되어 슬프다.
만화도 좋았지만 에피소드가 끝날 때 마다 쓴 민화에 대한 설명글도 좋았다.
책 뒤에 도움받은 책 목록을 보니 작가가 민화에 대해 참 많이 공부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통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존재가 소중하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옛 그림, 그 가운데서도 이름없는
화가들이 그린 민화의 세계를 여행하는 건 어떨까?
글을 쓰다보니 나도 소원을 담은 민화 한 점을 벽에 걸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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