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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행 1 임피 노성당老聖堂

by 만선생~ 2024. 3. 25.

 
 
임피 노성당老聖堂

 

지방에 가면 관아를 찾아보곤 한다.
지금은 군산에 속해있는 임피를 찾은 건 '노성당老聖堂'이란 관아 건물 때문이다.
객사와 동헌같은 중심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부속 건물인 이방청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헌데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다.
노성당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하길
관리하는 직원이 10시 쯤 들린뒤 돌아가곤 한단다.
전화를 하려 해도 전화 번호가 없었다.
여산 동헌에 갔을 때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는데.
담너머 노성당을 바라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이 건물을 이방 혼자 썼던 것일까?
아니면 이호예형공병방이 함께 썼던 것일까?
이방 혼자 썼다면 나머지 다섯개 건물이
더 있었다는 것이고 육방관속 모두 함께 썼다면 건물이 너무 비좁다.
강화도에 가 강화 유수부의 아전들 건물을 
본 적 있는데 상상 이상으로 커 놀랐다.
아전들 위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컸던 것이다.
담장 안으로 바라본 노성당은 수리 보수한
흔적없이 온전한 형태로 보존이 돼있는 듯하다.
아전들이 근무하던 건물을 질청 또는 작청이라 한다.
아마도 노성당은 이방청으로 사용하기 전
고을 선비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어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노성당 옆으론 연지란 아름다운 못이 있었다.
임피 현감은 이 곳에서 취하거나 연회를 베풀었을 거다.
정자 주위로 자란 세그루의 왕버들나무가 인상깊다.
연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사이클 복장의 한 사내가 다가와 아는체를 하였다.
꼭 가봐야할 곳을 지정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그의 태도다.
지주가 토지사업으로 땅을 빼앗기고 한국
전쟁 중 건물이 불타오른 것 까지는 그렇다 치자.
친일 행위로 일제에 비행기를 몇 대씩 헌납한
사람의 몰락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워낙 수다스럽기도 하고 뉴라이트의 전형을
보고있는 것 같아 말을 섞는게 싫었다.
한편 어떤 삶을 살았길래 대한민국 사람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의 후예가 아닐까 싶었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윤석열이 정권을 잡으니 저런 잡놈들이 나대고 있다.
숫제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 자와 헤어지고 노성당 위에 있는 임피향교를 둘러보았다.
여느 향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비록 퇴락해 있지만 향교는 관아와 달리 원형 그대로 거의 다 보존돼 있다.
유림들이 지역사회에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있어 일본조차 건드리지를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기능을 잃은지 오래다.
소수의 늙은이들만 향교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