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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해외 2 시가현 오미하치만

오미하치만- 고카쇼(五個荘)

by 만선생~ 2025. 2. 6.

 
 
고카쇼(五個荘)
우리 외할머니는 장사를 하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께 보고 배운 바가 있어 장사를 하셨다.
우리 다섯 형제 가운데 셋이 또 장사를 한다.
장사엔 전혀 소질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장사하는 이야기엔 흥미가 간다.
강진에 갔을 때는 병영상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일본은 일찍이 상업이 발전하여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일본의 3대상인을 오사카 상인, 이세 상인, 그리고 오미상인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오미 상인은 내가 며칠동안 머물렀던 오미하치만을 무대로 활동해
관심이 간다.
또한 조선 통신사가 지나던 길이었다.
오미상인은 또 하치만상인, 히노상인, 고카쇼상인으로 나뉜다.
일본 최대 호수인 비와호와 바로 맞닿아있는 하치만 그리고 좀 더 내륙에 위치해 있는 히노와
고카쇼가 각기 상업 활동을 이어왔다.
내게 일본은 부러운 나라다.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있을 뿐 아니라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들이 많아서다.
특히 하치만八幡, 히노日野, 고카쇼(五個荘)는 옛 상인들의 거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운하가 있는 하치만은 여러차례 돌아봐 제법 알게 되었지만 다른 곳들은 모른다.
고카쇼(五個荘)는 2018년 권숯돌 작가의 안내를 받아 돌아보았는데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글맵이 안내해주는대로 오미하치만역에 왔지만 고카쇼역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사람에게 물어봐도 몰랐다.
구글맵이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나 싶었다.
그렇게 고카쇼가는 걸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라 구석진 곳에서 오미선을 보게 된 것이다.
작은 노선으로 열차는 길지 않았다.
오미선(近江線)을 타고 20분쯤 달려 요카이치역이란 곳에 환승하여 두 정거장을 가면 고카쇼역이었다.
토요일임에도 역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인 정거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대다.
오후 네시만 돼도 어두워기 시작한다.
동경으로 표준시를 삼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같은 시간이지만 밝기가 다르다.
대신 일본이 한국보다 아침시간이 한시간 정도 빨라 일찍 해가 뜬다.
해방된지 80년이 됐겄만 그들 시간대를 쓰고 있으니 여전히 그들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고카쇼역에서 내린 것이 네시를 조금 넘어서다.
역에 비치돼 있는 안내 지도를 따라 걷는데 마치 시간 여행을 온듯 옛 모습 그대로다.
대신 사람이 없다.
이 곳도 인구 소멸 지역인 듯 하다.
안내 지도를 보니 일반에 공개된 상인들 집이 여럿이다.
그 가운데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았다.
상인 후지이 히코시로 (藤井彦四郞)의 저택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1876년에 나고 1956년 세상을 떠났는데 스키, 모사등을 제조 판매해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연못을 비와호를 본 떠 조성했고...회유식 대정원을 꾸몄다는데 번역기를 돌리지만 확실하지 않다.
딱 보기에도 엄청난 부잣집이다.
하지만 안내인이 입장불가라 말한다.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들어갈 수 없느냐 물어도 '무리데스'라며 손을 가위자로 젓는다.
할 수없이 입구 사진만 찍고 들어가려는데 다른 이가 들어오라고 한다.
상관인가 보다.
이 때가 4시 40분.
집이 정말 크고 좋다.
어디든 상류층 집은 다 그렇다.
일반인들은 꿈꿀 수 없는 그런 공간에서 살아간다.
가장 좋은 것을 입고 가장 좋은 것을 먹는다.
자녀들에겐 최고의 교육을 시킨다.
그리하여 부는 대물림된다.
가재도구들이 예사롭지 않은데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조선제 화로라 朝鮮製火爐;라 적혀있는 표식이다.
어떤 식으로 조선의 화로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하니 반가웠다.
정원도 훌륭하고 가문의 인물들을 조각해 만든
흉상들도 이 가문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돌아올 때는 역이 깜깜했고 승강장에서 젊은 연인이 정담을 나누었다.
아는 길도 물어간다고 여자에게 오미하치만으로 가는 게 맞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요금은 열차를 탈 때 열차에 비치된 발매기에서 표를 꺼낸 뒤 도착지인 오미하치만역에서 역무원에게
요금을 내면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와 쓰는 글.
아무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기록으로 남겨둔다.
다음 일본을 갈 때엔 시간을 내어 고카쇼의 다른 저택들과 히노 상인들의 근거지인 히노를 가고자 한다.

*석지훈
일제강점기에 신선로는 조선에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사가곤 했습니다.

2025.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