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학진흥원에서 의뢰받아 그리는 만화.
3~4 페이지 정도 그리면 된다는데 그리다보니 지면이 모자란다.
그래서 3페이지 더 추가. 7페이지가 됐다.
분량이 늘어났다고 고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닌데...
2~3일 작업한뒤 본 작업(목호)에 다시 들어갈 예정...
아래는 만화의 소재가 되는 원 텍스트.
경상도 성주 땅의 젊은 선비 도세순이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해와 그 이듬해까지의 일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했다.
용의해인 임진년부터 뱀의해인 진사년(?) 까지 써서
용사일기 龍蛇日記 라고 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노비 애정, 모성애로 자식을 살리다
1592년 4월 29일, 왜적들은 성주 인근의 벽진 일대를 수색하였다.
마을의 양반이나 상민들은 모두 도망을 하였지만 일부의
노비들은 남아서 주인집을 살피고 있었다.
마을에 왜적이 쳐 들어오자 여종 수정(守貞)은 봉명정
(鳳鳴亭)에 숨었다.
그러나 곧 수정은 왜적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왜적은 수정을 앞에서는 줄을 매어 끌고 가고 옆과
뒤에서는 붙잡고서 갔다.
수정의 어미인 여종 애정(愛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식이
끌려가는 광경을 보고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정은 하늘이 떠나갈 듯 통곡하였다.
그리고는 넘어지고 엎어지며 자식을 잡아가는 왜적 병졸들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왜적들 가운데 어떤 병졸이 애정을 떼 내려고 칼을 뽑아 칼의
옆면으로 애정을 툭툭 쳤다.
왜적들도 애정에게 칼날을 사용하여 내려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애정은 왜장(倭將)이 서원(書院)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정은 자식을 구하기 위하여 위무(威武)가 살벌한 서원으로 목숨
걸고 뛰어들었다.
서원 뜰 한 가운데서 애정은 구슬피 울며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본 왜장은 모녀의 정에 감동해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곧장 수정을 풀어주었다.
모녀는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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