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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남도

나주 석당간

by 만선생~ 2025. 6. 19.

 
 
 
 
 
나주 석당간
나주 4대문 중 하나인 동점문밖 멀지 않은 곳에 석당간이 있다.
돌로돼 있어 석당간이다.
당간이란 기둥을 말한다.
폐사지에 가면 당간지주를 곧잘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지주란 기둥을 받쳐주는
두 개의 돌이다.
나무가 썩어 없어지거나 누군가 땔감으로 가져다 쓰면 지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나주에 있는 한기형 집에서 머무르다 우연히 석당간 팻말을 보게 되었다.
석당간이라니?
언젠가 도올 김용옥 강의를 통해 청주에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을 알게 돼
검색을 해보았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렇지 청주시의 랜드마크가 될만한 엄청난 유물이었다.
나주에 있는 석당간도 그렇다.
하지만 퇴락해 있는 집들 사이로 서있어 빛이나지 않았다.
더구나 기단석 즉 지주는 1m 이상 땅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안내문을 봤으나 이해가 가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미루어 보건대 고려 창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고려 초 나주를 주요 거점으로 삼아 도시를 건설할 때 땅모양을 보니
마치 배와 같았다.
여기서 도선국사를 필두로 신라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풍수지리가 나온다.
돗대를 달면 나주가 순풍에 돛달듯 잘 나갈 거라 여긴 거다.
그래서 세운 것이 석당간이다.
이후 천년의 세월이 흐르며 토사가 쌓이고 쌓이면서 석당간은 아래로 가라
앉게 되었다.
한양도 조선초기와 지금 높이가 많이 다르다.
토사가 쌓이면서 1m 쯤 지대가 올라가 있다.
경복궁을 비롯한 전각들이 훨씬 더 위엄있게 보였을 거다.
석당간을 둘러보는데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할머니가 나와 인사를 하였다.
할머니께 언제부터 이 집에 사셨냐고 묻자 60년이 됐다 한다.
"이 집을 지으셨어요?"
"아뇨. 있던 집에 들어와 살았어요."
그러니까 최소 60년 이상 된 집이었다.
기와가 참 특이해 이 집 또한 유물이 아닌가 싶었다.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문화재 때문에 곧 집을 철거할
예정이란다.
모텔을 비롯해 그 일대 집들이 모두 떠나간단다.
보상을 충분히 받으셨는지 불만은 없어 보였다.
할머니가 석당간을 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모두 탑이 열두 매듭으로 되어있단다.
세어보니 열 매듭이다.
세는 방식에 따라 열두 매듭도 될 수 있었다.
탑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모르시는듯 당간을 계속
탑이라 하셨다.
지금은 고층 건물이 워낙 많아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엔
대단했을 것이다.
나주의 랜드마크로 석당간을 기준으로 살아갔을 거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말이다.
그런 눈으로 석당간을 보니 당간을 쌓을 당시 백성들이 흘린 땜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202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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