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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

최면장 1

by 만선생~ 2025. 6. 21.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배달은 어린 시절 나의 영웅이다.
아기장수 전설처럼 내가 사는 마을 곳곳에 그의 자취가 서려있었다.
마을 앞산에 오르면 그가 무술을 연마했던 터가 나오고 마을 어르신들은
그가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구루마를 맨손으로 끌고 산 고개를
넘었다고도 했다.
전북 김제군 용지면 하랭이 마을.
면소재지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m의 와룡산과 넓은 들은 지금도
내 가슴에 오롯이 각인돼 있다.
최배달 아니 최영의란 이름과 함께.
 
하랭이 마을은 최씨가 많았다.
아닌게 아니라 땅 대부분이 최씨 문중의 것이었다.
마을 한쪽에 있는 제각은 최씨가 이 마을의 주인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최면장네가 가장 잘 살았다.
최면장은 마을 최고 어른으로 키가 컸다.
90 가까이 된 나이지만 멀리서도 키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의 유지답게 최면장은 자식농사에도 성공해 큰아들은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고 둘째아들은 전북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네째 아들 영의는 일본으로 건너가 극진 가라데를 창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영의는 최배달의 본명으로 지금도 내겐 최배달보다 최영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우리집은 하랭이 마을 한 켠에 떨어져 있는 외딴집이었다.
이웃집에 가려거든 뽕나무밭 언덕을 하나씩 넘어 하는데 조씨과 살던
조산과 박씨가 사는 성록이네다.
외딴집이라 친구가 없던 나와 동생에게 여섯 살 아래의 성록이는 좋은
친구였다.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늘 함께 어울려 놀았다.
잠실만 덩그러니 있는 우리집과 달리 성록이네 집은 담이 사철나무
울타리였다.
집안에 들어서면 복숭아나무 몇 그루와 앵두나무가 있어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었다.
성록이 아버지는 인물이 좋았다.
성록이 어머니는 전주 사람인데 성록이 아버지 인물에 반해 시골 외딴집으로
시집을 왔다고 한다.
 
성록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씀이 별로 없으셨다.
우리가 집에 놀러가면 늘 집안일을 하고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이따금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내다 주셨다.
뒤에 알았지만 성록이 할머니는 최영의씨 누나였다.
시집을 갔지만 어떤 이유로 일년 만에 소박맞아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머슴과 눈이 맞아 살을 섞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인물 좋은 성록이네 아버지다.
최면장은 머슴에게 딸과 함께 살라며 밭을 내주었다.
우리 집 너머의 땅이 바로 그 땅이다.
한 해는 성록이네가 땅콩농사를 지어 땅콩을 실컷 얻어먹기도 했다.
그 해 가을 성록이네 아버지는 중동으로 돈벌러 가셨다.
 
2005년 병마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였다.
군산 일대와 아버지가 무면허 의사로 활동했던 용지면이었다.
우리가 서울로 떠나오기 전 용지면 하랭이 마을 와룡산 아래엔 조그만
성당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줄어 성당도 문을 닫게 되었고 우리가 찾았을 땐 잡초만
무성했다.
장난기 많은 동생이 성당의 종을 두드렸다.
댕~댕~댕~댕~
종소리는 조용하기만 한 하랭이 마을로 울려 퍼졌고 곧 누가 성당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짜식 괜한 짓을 해가지고”
마을 사람에게 한 소리 먹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걸어 올라온 사람과
아버지는 두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어머니 역시 내내 웃고 계셨다.
 
걸어온 이는 최면장의 세째 아들로 최영의씨 형인 최영범씨였다.
형들과 동생이 출세를 했던 것과 달리 최영범씨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다.
뭐가 잘못됐는지 살림이 펴지 않아 궂은 일도 많이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최영의씨가 땅 700평인가를 사줬단 얘기도 들었다.
최영범씨는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던 최영의씨보다 키가 컸고 뼈대가
굵어보였다.
한마디로 강골이었다.
최영범씨가 떠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연말에 연하장 하나 보내달라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안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해 병이 악화돼 연하장을 보내지 못했다.
내가라도 보냈어야하는데 그리 하지 못했다.
아직 살아계실지 돌아가셨을지 모르지만 그날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최면장과 아버지의 인연은 2012년 출간한 정가네소사 1,2,3권에 일부
소개되어 있다.
성록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지만 프라이버시 침해라
차마 그리지 못했다.

201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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