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이광사가 아들인 이긍익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았다.
윤성훈 선생님 페북을 통해서다.
흘려 써 읽을 순 없으나 글씨를 보는 순간 눈이 시원했다.
필치가 정말이지 유려하다.
편지의 주 기능은 내용을 전달하다는 것이지만 조형미에 마음을 더 빼앗긴다.
이름은 헛되이 전하는 법이 없다.
일세를 풍미한 서예가답다.
아버지 이광사가 글씨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듯이 아들 이긍익 또한
<연려실기술>이란 저서로 이름을 남겼다.
글씨에 반한 나는 이내 포토샵을 꺼내 들었다.
잡티를 제거하고 흰 바탕에 글씨만 보이도록 손을 보았다.
너무 좋다.
글씨를 출력해 벽에 걸어 놓고 싶다.
하지만 프린터기가 없다.
할 수 없이 여기 페북 공간에 올려본다.
아래는 윤성훈 선생님 페북에서 옮겨온 원문과 번역 글.
草, 一兩貿嶺南靑魚矣. ■紙無一片, 買來可. 醬絶■大豆爲三斗數升,
二斗作爋造, 其餘將作豆豉豆腐等襍用. 壬午運租半穅, 癸未略勝,
甲申頗精而或有不精者. 今年嚴飭令如一也. 島俗所貴似疏仡,
無一人有拔身意, 史帖無欲買者. 去上山者, 亦當還來,
常盡出送, 歸路問營邨及邑底, 可易矣. 歸至鳳里,
必受三百未收來. 重運得公都初試云, 可喜. 初十日禹鼎兄來
(…)
1냥은 영남의 청어를 사게 해라. 종이가 한 조각도 없으니, 사서 오너라.
장(醬)이 떨어졌으니, 대두(大豆) 3말 몇 되로, 2말로는 메주를 쑤고, 나머지는 청국장[豆豉]과
두부 등 여러 용도로 쓰려고 한다.
임오년(1762)에 운반해 온 벼는 겨가 반이었고, 계미년(1763)은 약간
나았고, 갑신년(1764)은 꽤 좋았으나 간혹 좋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올해는 엄히 신칙하여 고르게 해야 한다.
이 섬의 풍속은 귀하게 여기는 것이 먼 옛날 사람들 같아서 출세하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사첩(史帖)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상산(上山)에 갔던 것도 돌아와야 하는데, 항상 모두 내보냈으니
돌아오는 길에 영촌(營村)과 읍저(邑底)에 물으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봉리(鳳里)에 이르면, 반드시 미처 받지 못한 300을
받아와야 한다.
중운(重運)이 공도 초시(公都初試)에 합격했다니, 기쁘다.
10일에 우정(禹鼎) 형이 왔는데, (…)
202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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