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장사 이봉걸.
키 205센티미터.
체중 130킬로그램.
당시 씨름선수 중 가장 키가 컸고 그래서 인간 기중기라 불렸다.
신체조건으론 따라올 자 없건만 키가 180밖에 안되는 이만기만 만나면 고개를 숙인다.
제대로 된 기술한번 써보지 못하고
모래판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저 ..저. .저. . 아우 내가 미쳐"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저 얄미운 이만기 한번 쓰러뜨렸음 소원이 없겠는데...
한마디로 이만기엔 적수가 없었다.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도 기술씨름의 달인 홍현욱도 이만기엔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희망 이봉걸도 이만기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1990년 1월.
그날은 스포츠 중계를 보기 시작한 이래 가장 짜릿한 날이었다.
인간기중기 이봉걸이 이만기를 쓰러뜨리고 천하장사가 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선만큼은 아니지만 내 인생의 가장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80년대 초 프로씨름이란 게 생긴이래 씨름판의 모든 영광은 이만기가 가져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률 7할이 넘었고 거기다 잘생기기까지 해
대중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비주류였다.
언제나 삐딱선을 탄다.
프로야구 1위팀 오비베어스보다 꼴찌 삼미 수퍼스타즈를 응원했고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만화가 이현세보다 장태산을 더 좋았했다.
모두가 가는 길보다 샛길로 새 다른 길을 걷는 사람.
그게 나였다.
아무튼 다시 씨름얘기로 돌아와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도 끝은 있었다.
새까만 모교후배인 강호동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변이었다.
이후 이만기는 강호동만 만나면 판판히 깨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만기가 이긴적도 있지만 내 기억속의 이만기는 강호동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 모든일에는 상대성이 있어서
강호동은 이봉걸에 유독 약했다.
이봉걸에 한해선 승률 3할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만기와 이봉걸은 지는해였고 강호동은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은퇴후의 삶도 각기 갈렸다.
이만기는 대학교수로 씨름 해설인으로 또 방송인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다만 정치에선 성공하지 못했다.
총선에 세번출마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김해선거에서 김경수와 토론하는 걸 봤는데 자질이 형편없었다.
철지난 색깔론으로 상대를 몰아치기 급급했다.
정치를 해선 안될사람이었다.
강호동은 연예계로 진출. 최고의 엠씨가 되었다.
잘나가던 시절엔 시청률을 담보해주는 흥행 메이커였다.
강호동이 출연하는 방송을 지나가며 몇번 봤었다.
소리만 꽥꽥지른다.
성공요인이 뭔지를 모르겠다.
은퇴 후 이봉걸의 삶은 알려진게 별로없다.
민주당 어느 지역 스포츠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정도다.
이만기나 강호동처럼 영악하지 않아 큰 부를 이룬 것 같지 않다.
문득 생각나 쓴 이봉걸 이야기.
수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검색해 찾아봐도 되지만 귀찮네요.
20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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