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살 무렵이다.
약주를 거나하게 드신 아버지는 또다시 정치 얘기를 하셨다.
"이승만은 만고의 역적이고 박정희는 세상에 있어선 안될 악인이여."
나에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말씀이다.
왜냐면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말씀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아버지가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이름을 꺼내셨다.
"박순천요?"
"이 놈아 박순천 몰라.
허~ 이 놈 책깨나 읽는다
싶어 뭔가 아는 줄 알았는데 숫제 맹탕일세. 공부 다시혀 "
나는 화가나 견딜 수 없었다.
자식이 모르면 조곤조곤 설명해주면 될 것을 호통 먼저 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다.
그날 아버지는 끝내 박순천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박순천이 누구인지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러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로소 의문이 풀린 것이다.
여성으로선 국내 최다선인 5선 의원이자
야당인 민주당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젊은날엔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루었으나
일제말엔 친일로 돌아섰고 해방이 되어선 정계에 투신 이승만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협력했던 것처럼 박정희의 유신을 찬양하고 육영수추모기념회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영욕의 세월을 살다간 여성 정치인이었다.
알마전 한 대학에서 작가강연을 하였는데 강연도중 빨치산 얘기를 꺼냈다.
어. 이거 뭐지?
학생들은 내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너나없이 빨치산이 뭔지 모른단다.
충격이었다.
우리세대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아이들에겐 상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겐 박순천이란 인물이 상식이었지만 내겐 상식이 아니었듯 나의 상식이
아이들에겐 뜻모를 이야기였다.
우리는 전쟁을 작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세대로부터 빨치산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또 90년대 초엔 출판계에 빨치산 수기가 봇물을 이루었다.
집단의 기억이 전승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집단의 기억은 끊기고 말았다.
우리가 아버지들에게 들었던 6.25보다 아이들은 5.18이 더 아득하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의 상식을 모른다하여 윽박지를 순 없다.
다만 작가로서 우리세대의 기억을 아래세대에게 전해줘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윗세대의 기억을 아랫세대에 전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나에겐 있는 것같다.
만약 그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아니라면 운명이라 착각하며 살아갈테지.
착각은 자유니 말이다.
시대적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되도않는 작품으로 돈푼이나 벌며 살아가겠단
생각의 차이.
나의 생각은 시대적 소명이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20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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