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니는 종교가 없었다.
그런데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창미 엄마의 권유로 회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니는 날마다 회관과 창미엄마 집에 가서 남묘호렌게교를 외웠다.
우리말로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데 이 것만 외우면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엄니의 신앙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큰형이 왜색종교라 하여 너무나 싫어했던 것이다.
마음둘데 없던 엄니는 이제 작은 엄니의 권유로 장성 백양사 말사인
천진암을 다녔다.
때마다 서울서 내려가 시주를 하고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했다.
일배 이배 삼배 사배 오배 육배...
절을 하면 할수록 허리와 무릎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몇년 전 했던 수술 부위가 도졌던 것이다.
비구니 스님께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스님은 경을 하나 주면서
외우라고 했다.
반야심경이었다.
엄니는 경을 아무리 읽어도 마음의 병이 가시지 않았다.
경을 읽는 와중에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실 엄니는 경을 읽긴 하지만 뜻을 몰랐다.
이걸 읽어 무엇을 하나 싶었다.
엄니가 결정적으로 절에 등을 돌린 건 스님의 냉랭함이었다.
그 먼곳에서 찾이왔건만 따듯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마음의 위로를 받기는 커녕 마음의 상처만 더 깊어졌다.
세월이 흘러 우리집은 오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엄니는 동네에서 친구분을 사귀었는데 친구분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엄니는 교회에 발을 들였다.
크지않은 교회로 목사님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했다.
서울대를 나왔다하니 말씀부터 다르게 들렸다.
정말이지 절과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목사님부터 권사님까지 살갑게 맞아주었던 것이다.
생일을 맞거나 집안에 무슨일이 생기면
함께모여 기도를 해주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살뜰히 챙겨주는게 너무나 고마웠다.
크지 않지만 주일마다 헌금을 내고 감사
헌금도 내었다.
문제는 성전이전으로 불거졌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교회가 작아 큰곳으로 옮기니 성전이전
기금으로 500만원을 내라하였다.
엄니는 충격을 받았다.
500만원을 구할데도 없지만 교회가 돈만 밝히는 것같아 만정이
다 떨어졌다.
그뒤 엄니는 목사의 숱한 전화연락을 뿌리치고 교회에 일절
나가지 않았다.
엄니는 자신의 몸이 쇠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죽으면 다 끝이지 뭐"
그렇다.
엄니는 천당도 극락도 믿지읺는다.
죽는 순간 모든게 끝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와 부처 모두 싫어했던 아버지 사생관 그대로다.
나는 극락과 천당이 있어 일생 고생만 하신 엄니가 영원한 삶을
살았음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숨이멎는 순간 모든게 끝난다.
느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만약 삶이 내세로 이어진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진정한 효도는 살아있을 때 잘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 엄니를 기쁘게 해드린 적이 없다.
최소한의 자식된 도리조차 못했다.
생각해보면 엄니의 종교는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었다.
자식들이 종교였다.
엄니는 오늘도 내가 잘되기만을 바라고 계신다.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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