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후배가 작업실에 아무도 없다며 막걸리를 마시자고 한다.
나는 딱 한잔만 마시겠다며 술 잔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한 잔으로 끝난 적은 없었다.
한잔이 두잔 되고 두잔이 세 잔이 된다.
취기가 올라 공통의 관심사인 여자 얘기를 했다.
후배는 여자를 만난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고 했다.
"야 나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외롭게 살고있는지 경쟁하듯 말들을 토해냈다.
생각하니 정말 그랬다.
내 인생엔 여자가 없었다.
만화를 그린답시며 허구헌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여자 구경을 못하는 거다.
결정적으로 돈이 없으니 여자는 티브이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 형 설마 이제껏 여자를 한번도 안만나봤단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죠?"
생각하니 여자를 아주 안만났던 건 아니다.
지금도 마음속으로 그리워 하는 존재가 있다.
언젠가 우연이라도 다시 만났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형의 첫사랑이시군요?"
"아마도..."
취기가 오른 나는 후배에게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그 사람 사진을 보여 주었다.
후배는 인상비평을 했다.
" 은행원 같아요"
"은행원? 은행에 다닌적이 없는데..."
"느낌이 그래요"
은행원이라니...
은행원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 걸까?
있다.
못매무새가 단정하다는 거다.
화장이 진하지 않다.
뭔가 꼼꼼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후배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예쁘다. 귀엽다 등등의...
나는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얼굴을 한번씩 그려보곤 했다.
그 사람 역시 여러번 그렸다.
뒤태가 예쁘다고 생각해 뒤태도 그려보았다.
특히 머리를 뒤로 묶었을 때 드러나는 목선을 좋아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참 좋았다.
그 사람은 찻집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냅킨에 무언가를 끄적이곤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되는데 그 때 드러나는 것이 가슴골이다.
보일락말락한 가슴골...
그 때마다 나는 차마 바로 보질 못하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주어야만 했다.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는 후배의 사랑 이야길
들었다.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랑이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다 현재로 돌아오니 외로운 독거남 둘이 술잔을
부딪히고 있는 거다.
"형 맘에 드는 사람 없어요?"
" 야... 있으면 진작 그림으로 그려봤지.
짝사랑이라도 좋으니 그림으로 그려보고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타나줬음 소원이 없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두 병과 캔맥주 네 개를 비웠다.
"끄윽... 아.. 취한다."
"형 취한지 오래됐어요. 이제 들어가 주무세요."
술이 약한 나는 숙취로 인해 다음날 작업을 전혀 못하고 놀기만 하였다.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