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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권샘

권숯돌 작가 글

by 만선생~ 2025. 11. 9.
한국의 모대학에서 다양성에 관한 일본어 에세이 의뢰를 받아 썼는데 그 글을 교재로 활용하고 싶으니 다시 한국어로 번역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일부러 페북에 올리는 이유는 특별히 일본에 계신 페친들과 이 문제에 대해 교감을 가지고 싶어서입니다. 본문 내용도 이어서 올리려 합니다만 부디 짧은 소회라도 댓글에 달아주시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몇마디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도입부만 붙입니다.
 
1.들어가며
  기존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이 단어는 팔레스타인 곧 오늘날 이스라엘 지역 바깥으로 흩어진 유대인이나 그 공동체를 총칭했지만, 최근에는 그 사용범위가 넓어졌다. 현대에는 역사적 이유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주된 경우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의사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중에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에 서 있는 감각과 흔들리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다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도 넓은 의미에서 ‘디아스포라’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더 확장된 의미에서는 계속 태어난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감각을 가졌다면 그 또한 ‘디아스포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와 함께 연상되는 단어에는 소수자와 다양성이 있다. 어떤 사회에도 주류가 만든 커다란 틀 주변에는 어떠한 이유로든 그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혹은 들어가기를 거부한 경계인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이 모여 또 하나의 원을 이루고 그 원들이 다양할수록, 또한 주류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지금은 주류의 틀 속에 들어있는 사람도, 언제라도 어떠한 계기로 소수자의 원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인이나 소수자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서 있는 장소가 바뀌지 않았는데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한국안에서만 살았다면. 아마도 경계인의 감각이 어떤 것인지,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왜 힘든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이긴 했지만 일본으로의 유학은 내 인생을 어느 날 갑자기 주류에서 소수자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감각은 주류사회의 노골적인 차별보다는 오히려 미세한 체감의 문제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처음 일본에 온 것은 겨울이었다. 처음 살게 된 곳은 지은 지 30년 이상이나 된 오래된 목조 주택이었다. 그래서 방안은 여기저기 외풍이 심했다. 그 추위는 이국에 온 흥분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고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나는 한국의 온돌방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워졌다. 물론 일본에도 난방은 있다. 여름에는 쿨러가 되고 겨울에는 히터가 되는 겸용 에어컨디셔너가 벽에 붙어있고, 탁자 밑에 열선이 달린 코타츠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인 내게는 아무리 공기를 덥혀도 방바닥 전체가 데워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소수자에게는 같은 계절 같은 기온이라도 주류사회의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체감온도가 존재한다. 이런 체감의 차이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거나 익숙해질 때까지의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단순히 그런 적응의 문제도 아니며 체감온도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유학생도 아니고 지금은 일본인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며 이곳에서 일하고 일본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 큰 문제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내가 디아스포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일본에 오래 살아도 아무리 일상회화에 문제가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과 표현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와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를 상대에게 설명하고 이해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때마다 자신의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고 점점 말 수가 적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소수자이기에 행정적 혹은 법률적으로 부딪치는 독자의 트러블과 스트레스도 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정기적으로 해야하는 비자 갱신의 시기에 받는 압박감도 그 중 하나다. 입국관리국의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서 경제적 부분은 어떻게 하는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그런 서류들을 작성할 때마다 이 나라에 살기 위해 부디 허락해 주십사고 애걸하는 입장이 된 듯하다. 그리고 입국관리국 공무원들 중에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반말을 하거나 상대를 어른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모국인 한국에 돌아가면 그런 스트레스가 없어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부모 형제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고국에 돌아갔을 때, 나는 내가 여행자와 같이 주위 사람들 속에서 괴리되어 떠 있는 존재처럼 느낄 때가 많다. 한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 등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이기에, 이곳이 내가 예전 살았던 그 곳인가 하는 연속성을 점점 잃어버리는 이유도 크지 싶다.
 이런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일테지만. 공론의 장에서 솔직한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주류사회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목소리들을 듣는 기회는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점을 가진 창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밝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당분간 국가간의 왕래가 이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정보와 노동력의 세계화가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계시민이 탄생할 것이고, 보다 많은 자발적 디아스포라들이 양산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사회의 다양성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점점 더 중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과 다양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의 수가 상승 일변도를 걸어왔고, 지역사회, 대학, 산업현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다문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단일민족으로서의 (오키나와나 홋카이도 원주민, 재일 조선인 등을 제외하고) 정체성이 뿌리깊기 때문에, 급속한 세계화에 사회체제나 사람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자문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여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주류사회가 소수자의 문화나 가치관, 역사적 경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디아스포라로서 전전해 온 내 외국생활을 정리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학교나 직장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을 복원하려 한다. 거기에는 주류사회와 소수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편견도 있고, 나와 같은 디아스포라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한 일본인들도 있다.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우정과 연대를 배웠고 다양성이 살아있는 사회의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고민과 좌절도 얘기하려고 한다. 나는 스스로가 다문화 가정의 일원이고 당사자이기에, 돌아보면 결혼생활과 육아과정 속에서 경험한 문화충돌도 많았다. 그것을 얘기하는 것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다양성사회를 이해하는 소중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하는 일본어 부분)
 
1.はじめに
  元の居住地を離れて暮らす民族のコミュニティをディアスポラという。この言葉はパレスチナ以外の地に移り住んだユダヤ人によく使われたが、最近はその使い方がより広くなっている。現代では歴史的理由での強制じゃなくても自発的な意思によって、異国で過ごす人々も多いが、中にはどこの国にも属さずボーダーラインに立っている感覚や、揺れる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持った境界人も多数いる。こういった人々も広い意味でディアスポラと呼んでいいだろう。さらに拡張された意味ではずっと生まれた地域に住んでどこへも移さなくても自分がその社会のマジョリティじゃない感覚を持ってるならその人もディアスポラといえるらしい。
 ディアスポラと一緒に連想できる言葉にはマイノリティと多様性という言葉がある。どの社会でもマジョリティが作った大きな枠の周りには何らかの理由でその枠に入れないあるいは入ることを拒む境界人たちがいる。そしてその人々が集まった集団である小さなマイノリティの輪がいっぱい存在する。その小さな輪が多様であればあるほど、その輪がマジョリティと調和を成して共存できる環境であればあるほどその社会は健康であるといえるだろう。この輪は生きた生物と同じく固定してるわけではない。今はマジョリティの枠に入っている人でもいつでも何らかのきっかけでマイノリティの輪に入る可能性はあるからだ。しかし、境界人やマイノリティになったことのない人が彼ら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ことはたやすいことではない。立っている場所が変わってないのに見える風景が変わることはめったにないからだ。
 実は私もそうだった。韓国で生まれずっと韓国の中に住んでいたら、たぶん境界人の感覚がどういうものか、マイノリティとして暮らすことがどうして大変なのか知らずに済んだかも知らない。しかし、自分の意志ではあるものの日本への留学は私の人生をある日突然マジョリティからマイノリティへ変えるきっかけになった。そういった自覚はホスト社会の露骨的な差別というよりむしろ微細な体感の問題からくる場合も多い。私が初めて日本に来たのは冬だった。最初の住まいは築30年以上の古い木造の住宅だったため、部屋の中はあっちこっち隙間風が凄かった。その寒さは異国に来た興奮をぶっ飛ばすほどふるさとを離れた寂しさを増加させた。そして私は韓国のオンドルが恋しくてたまらなくなった。もちろん日本にも暖房はある。夏はクーラになり冬はヒーターになる兼用エアコンもあるし、座テーブルの下に熱線がついてるコタツというものも使える。でも、韓国人である私にとってはいくら空気を温めても床全体が温かくならないかぎり根本的な寒気が消えない気がした。
 このようにマイノリティには同じ季節や気温でもホスト社会の人々が感じるのと違う体感温度が存在する。そしてこのような体感の違いはまだ慣れてないから慣れるまでの時間の問題だと考えがちだが、実はそういう単純な適応の問題でもないし、体感温度だけに限ることでもない。私はもう留学生ではないし、今は日本人と結婚し家族になって働きながら日本の地域社会の一員として平和に過ごしている。しかし、いまも私は自分がディアスポラでマイノリティだと思う。いくら日本に長く住んでいても、いくら日常会話に不自由がないとしても目に見えない感性や表現の壁があるからだ。家族や親友のように親しい関係でもそのような違いを相手に説明し理解させることは楽ではない。その度に自分の表現力の限界を感じてあきらめてだんだん無口になってしまう時も多い。
そしてもう一つはマイノリティだから行政的あるいは法律的にぶつかる独自のトラブルやストレスも大きい。例えば定期的にビザ更新の時期に受けるプレシャーもその一つである。入国管理局の審査にパスするためには経済的な部分はどうしてるかなどを証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いった書類を作成することは、この国に住むためにどうにかご許しを求める立場になった気分にさせる。そして入管の公務員たちの中には外国人だから露骨的にため語でしゃべり、相手にちゃんとした大人としての敬意を払わない人もいたりする。
 では母国の韓国へ帰ればそのようなもどかしさがなくなるかというとそうでもない。親族の訪問や友たちと会うために国に帰った時、私はいつも自分が旅行者のように周りとは浮いてる存在であることを感じる。定住してないからの理由もあるが、社会システムや人々の考え方や生活パターンなどが急激に変わる時代だからここが以前私が住んでた場所だという連続性がますます薄くなっていく理由も大きい。
こういう境界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ポジティブに受け入れるかネガティブに取るかは個人の選択だろうが、公論の場で正直な思いをぶつけてみるのも意義はあるし、マジョリティの人にとってもこういった声を聴くことは世界を除くもう一つの窓を得ることになると思う。多様な視線を持った窓は社会に多ければ多いほどよいだろう。コロナパンデミックでしばらく国家間の往来が以前のようにはならないけれど、これからも情報と労働力のグロバル化の進行が後退することはないと思う。そうなると今より多くの世界市民が誕生し、より多くの自発的ディアスポラが量産されるに違いない。そのゆえ社会の多様性に関する真剣な議論はますます重要になっていくと思う。
 最近日本でも多文化社会への関心と多様性に関する議論が活発になっている 。日本に住む外国人の数が上昇の一途をたどってきて、地域社会、大学、産業現場を構成する人々が多文化化しているからだ。しかし、日本も韓国と同じく長い間単一民族(沖縄や北海道の原住民、在日などは除いて)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が根強いため、急速なグローバル化に社会体制や人々の認識がついて行けず自文化中心主義から脱却されてない。多様な背景を持つ人々が容認し共に生きていくためにはまずホスト社会がマイノリティの文化や価値観、歴史的な経緯を知ろうとする努力が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ここで私はディアスポラとして転々した私の外国生活を整理する同時に今まで学校で職場でそして地域社会で出会った多様な人物に関する記憶を復元しようと思う。彼らを通じてマジョリティ社会とマイノリティの間に起こりうる誤解と互いの偏見について除いてみたい。そして私のようなディアスポラと積極的に友たちになろうとした日本人も紹介したい。私はその人たちから友情と連帯を学び多様性が生きている社会の希望も感じた。最後に私は自分の悩みと挫折も話したいと思う。私は自分自身が多文化家庭の一員で当事者なので、振り返ってみると結婚生活や育児過程の中で経験した文化衝突や笑いと涙のエピソードも多い。それを語ることは身近なところから多様性社会を理解する大事なカギにな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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