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시키는 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 나는 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내게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그냥 하는 어떤 것.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신문사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됐다.
글은 월급이자 생활이었고, 한편으로는 숙제이자 의무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내가 쓴 글이 인쇄가 되어 나온 것을 보는 것은 여전히 신비로운 순간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회사와 관련되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기사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쓰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신나고, 가장 즐거운 글은 기사다.
그런데도 기사 이외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면서 생긴 자연스런 욕구였을 것이다.
`내 글'을 쓰고 싶어졌을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회사의 선배 기자들이었다. 자기 책을 쓰는 기자?
아니었다. 사진 기자들이었다.
<한겨레21>에서 문화팀장을 하던 시절,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이는 당시 사진팀장이었던
강재훈 기자였다. 그는 혼자서 시골의 분교를 찍고 있었다.
"왜 선배는 자기 작업을 해요?"
정말 바보같지만 궁금해서 물었을 때 강 선배는 웃으며 답했다.
"내 작업을 따로 하면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
그 뒤로 나는 밥벌이의 프로들 중에서 자기 혼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혼자 관찰하곤 했다.
원고료가 없어도, 귀찮고 괴로워도, 가족들이 툴툴대도 자기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하는 사람들,
힘들어서 즐거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들여다봤다.
그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은 뒤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06년 쯤이었다.
원고료? 필요없었다. 그냥 쓴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 내 마음이 시킨 글을 쓰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나가오카 겐메이의 말을 빌자면, "내 자신이 클라이언트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밥벌이 외의 글쓰기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그 글들이 다른 글을 불렀다.
그냥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글을 요청해오는 일들이 생겨났다.
고맙기도 했고, 그 역시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 이제는 서서히 일이 되어간다.
과연 나는 처음의 그 마음으로, 마음이 시키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
다시 마음을 잡고, 마음에 소리에 귀를 기울 때가 온 듯하다.
마감을 마친 오후, 모처럼 회사에서 마주친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 찍어온 사진을 보여줬다.
베테랑 사진부 기자인 그 선배는 주말이면, 눈이 오면, 그리고 행사가 있을 때면
홀로 카메라를 들고 주제를 잡아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그저 자기가 좋아 찍은 그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상의해왔다. 아름다운 그 사진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그 사진을 보여주는 선배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그의 사진 전시회를 열 수 있는 전시장을 알아보기로 의기투합하고 이야기를
마칠 때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봐줘서 고마워.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나는 "보여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 사진을 볼 수 있어 진정 고마웠다.
어서 그의 사진을 전시장에서 제대로 프린트한 큰 이미지로 보고 싶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무엇을 쓰고
싶어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그 선배의 사진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2013.6.26
'빌려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루치 아라치 (기사 퍼옴) (0) | 2025.11.18 |
|---|---|
| 노인이 노잼인 이유 (공감이 가 퍼온 글) (0) | 2025.11.16 |
| 의무방어전 (펌) (0) | 2025.11.09 |
| 익숙한 듯 생소한 건축물 마치야 (퍼옴) (0) | 2025.11.06 |
| 당신이 노력해서 잘된 게 아니다 (퍼옴) (0) | 2025.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