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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남도

빛고을 광주, 광주천

by 만선생~ 2026. 1. 26.

 
 
빛고을은 광주, 빛내는 광주천이다.
빛내 광주천은 빛고을 광주를 가르며 흐른다.
서울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청계천이라 생각하면 된다.
광천동은 광주천변에 자리한 동네다.
지금도 그렇지만 70년대엔 광주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했단다.
그리고 광천동 일대에 공단이 들어서 노동자들의 수가 많았다고 한다.
1978년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이란 것이 있었다.
전남대 교수들이 권위적이고 굴종적인 국민교욱헌장에  반기를 들고
교육지표란 걸 선언했다.
당국은 교육지표에 가담한 교수들을 전원 해임했다.
학생들은 이같은 조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고 학교는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전원 제적한다.
스물두살의 전남대생 박기순은 학교에서 제적 당한뒤 들불야학이란 것을 만든다.
강습소는 광천동에 자리한 광천동 성당의 교리실이다.
여기 다수의 전남대생들이 강학(교사)으로 참가한다.
이어 서울에서 주택은행을 다니다 퇴직해 내려온 윤상원과 광천시민아파트에서
주민활동을 이어가던
김영철이 강학으로 참가한다.
이로서 들불야학은 배움에 목말라 하던 노동자들의 소중한 배움터로 자리하게 된다.
단순히 검정고시를 패스하기 위한 공간을 넘어 노동자로서
의식을 함양하고 연대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80년 5월. 이들 노동자들과 강학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계엄군과 맞서싸운다.
진실을 보도해야할 방송과 신문은 계엄군 편이었다.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웠다.
진실을 알리고 광주 시민의 힘을 하나로 묶어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투사회보란 유인물이다.
들불야학에 있는 등사기로 투사회보를 찎었다.
적게는 열명 많게는 스무명 가까운 노동자와 강학들이 투사회보를 찎고 돌렸다.
그 중심엔 윤상원 열사가 있었다.
광천동 성당엔 들불야학 강습소로 쓰였던 교리실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건물의 일부를 남겨 놓았다.
들불야학 터다.
 
202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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