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던 오미하치만 중심도로에 옛집이 있는데 자료관으로
쓰이고 있다.
입장료는 다른 곳까지 합쳐 800엔.
우리 돈으로 8,000원 쯤 한다.
비싸단 생각이 살짝 들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에도시대
상인의 집을 구경할 수가 없으니 설령 2,000엔을 받아도 둘러볼 참이었다.
구반가로 불리는 이 집은 1827년 짓기 시작해 1840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당시 민간주택은 3층짜리 집을 지을 수 없었으나 오미상인의 힘이 막강해
3층까지 지었다는 것이다.
집의 규모가 엄청커서 2층에 올라가니 거실이 마치 운동장 같았다.
뿐만 아니라 서양식 접객실도 따로 있었다.
다만 건물이 관공서나 학교건물로 쓰이다보니 주택의 본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전에 보았던 오미상인의 집과는 달리 썰렁했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에게 특별하다.
조선통신사를 작은방 하나 정도 크기에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가 쓰던 그릇이 있고 통신사 행렬을 프라모델로 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통신사 인형이 눈에 띈다.
총 두 개인데 당대 제작한 것이었다.
더불어 조선통신사에 접대한 음식상들을 재현했는데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
조선통신사를 대접하느라 일년예산의 반을 썼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 안난다.)
다른 곳과 달리 통신사방에는 한글로 된 안내문이 일본어 안내문과 나란히 있어 좋았다.
사실 읽기 전 은근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심기를 상하게하는 문구가 있을까봐서다.
다행이 그런 문구는 없었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큰 집을 지은 상인의 후손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메이지 시대 몰락했을 뿐만 아니라 대도 끊어졌다고 한다.
완전한 몰락이다.
부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가문도 있는 반면 당대 아니면 다음대에서 급격히 쇠락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한 때 일본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조선을 포함해 아시아의.많은 나라를 수중에
넣었고 80년대엔 경제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위협했다.
버블경제가 꺼진 뒤에도 20년 가까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를 중국에 넘겨 주었고 한참 밑이라
생각했던 한국이 턱밑까지 쫓아와 위협하는 형국이다.
경제규모 면에서 여전히 한국을 압도하지만 예전같지가 않다.
한국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며 성장해갈 것이라 예상되지만 일본은 반등의 계기가 없다.
자민당 일당독재로 인해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그에 따라 경제도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다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간다했으니
여전히 아시아의 강자로 남아 명맥은 이어갈 것이다.
집을 그렇게 돌아보고 나오면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조선인가도'란 표지석이 나온다.
조선 통신사가 지났던 바로 그 길이다.
표지석 바로뒤엔 시가현을 일컫는 시가은행이 있는데 우리발음으로는 자하은행이다.
2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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