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안간 청나라 화폐들을 갖게되었다.
순치통보 강희통보 옹정통보 건륭통보 가경통보까지 총 아홉개다.
중국 역사를 좋아한 덕에 화폐를 보는 순간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3대황제인 순치제부터 7대황제인 건륭제까지 청나라 전성기였다.
이자성에게 무너진 명나라와는 비교불가였다.
하지만 8대황제인 가경제부터 나라가 기울기 시작,
10대 황제인 동치제에 이르러선 서세동점의 시기를 맞는다.
아편전쟁 이전의 청은 동시대 존재했던 나라들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제국이었다.
조선 안남 유구 필리핀 버어마 태국 카자흐스탄을 제후국으로 거느렸다.
청나라의 권위를 인정하지않고선 국체를 보존할 수 없었다.
무역은 오직 조공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제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알 수 있다.
발전한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파의 출연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토록 강대했던 제국의 화폐는 어떤 모습일까?
화폐엔 특이하게도 두가지 문자가 새겨져 있다.
앞 면엔 한자, 뒷면은 만주문자다.
만주문자는 세로글자지만 읽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내려간다.
여기 뒷면의 글자는 중앙조폐청을 뜻하는 보천이란 한자를 음차해 쓴 것이라 한다.
만주문자는 낯설다.
살아가면서 볼기회가 없다.
청나라가 망해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때문이다.
내가 만주문자를 처음 대한 것은 석촌호수에 있는 삼전도비에서다.
1637년 조선의 임금으로부터 삼고구배의 예를
치루게 한 청태종 홍타이시는 심양으로 돌아가
삼전도에 비를 세우라 명령한다.
삼젘도비라 알려진 대청황제공덕비다.
이 비는 유래없이 만주문자와 더불어 한자 그리고
몽골문자를 써서 황제의 덕을 기리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이 비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자 바로 강에 묻어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땅으로 끌려나왔지만 비에 대한 파손행위는 계속 되었다.
어떤이는 밤몰래 렉카로 시뻘겋게 엑스자를 칠하고 달아나버렸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
삼전도비를 보존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보호각 안에 유리를 씌워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글자는 마모되어 읽을 수 없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한가지.
삼전도비는 우리나라 비 가운데 가장 크다.
광개토대왕비보다도 크다.
청의 요구로 대청황제 공덕비를 세웠지만 청은 더 큰 공덕비를 요구했고 조선조정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에게 만주는 잃어버린 땅이다.
언젠가 되찾아야할 고토다.
우리 가족에게도 만주는 남다른 곳이다.
할머니가 묻혀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유골을 모셔오지 못한 것을 일생의 한으로 생각했다.
만주는 우리민족에게도 특별하지만 만주족에게도 특별한 곳이다.
그래서 청나라 때에는 만주지역을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봉금정책을 폈다.
명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농민반란군인 이자성이었다.
하지만 자금성을 접수한 이자성은 얼마지나지 않아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생긴 힘의 공백.
만주족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전광석화로 북경을 접수하며 중국대륙을 차지했다.
더하여 자신들의 근거지인 심양을 떠나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내가 만주문자를 다시본 건 북경 자금성에서다.
전각에 걸린 편액엔 놀랍게도 한자와 함께 만주문자가 병기되어 있었다.
중국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지만 청조의 출발은 만주였다.
그들은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여느 북방민족처럼 한족에 동화되는 걸 경계했다.
두발과 복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문자 역시 버리지 않았다.
한자와 만주문자를 공식문자로 썼다.
만주문자로 쓴 역사서도 펴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조선왕조가 만주문자와 같이 한글을 한자와 더불어 공식문자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지만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202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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