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내게 가장 친한 친구는 동생이었다.
마을과 외따로이 떨어진 집에 살아 더 그럴 것이다.
어머니가 학용품을 사주지 않아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학교에 안갔다든지
사슴벌레에 실을 묶어 종이배를 끌게 했다는 등등 나에겐
전혀 없는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말한다.
우리 가족이 서울 청량리로 올라온 것은 1979년 겨울이었다.
나는 열두 살 동생은 열 살.
우리 가족이 서울에 터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건
안양에 살고있는 이종사촌누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모인 어머니를 그렇게 따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사촌누나에게 돈을 꾸었는데 원금 일부와 이자를
갚을 땐 꼭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청량리에서 안양 석수역까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돈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스무개 가까이 되는 역을 지나야 하는 머나먼 길.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늘로 높이 솟은 고층빌딩과 TV에서만 보던 옥외광고판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용산역에서 노량진역으로 가는 한강철교를 지날 때마다
나는 건설장비와 낯선 이름 하나를 보았다.
삼부토건.
TV광고에도 나오지 않는 이름이 한강 수면 위를 떠다닐 때마다
저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몇십년이 지난 재작년에야 풀렸다.
부여에 뿌리를 둔 건설사란 걸 열린 공감 TV를 통해 알았다.
조남욱 회장과 줄리 그리고 윤석열로 이어지는 커넥션이
헐리우드 영화보다도 더 흥미로웠다.
훗날 그들의 더러운 커넥션은 영화와 드라마로 숱하게
만들어져 소비될 것이었다.
마치 장희빈처럼 하나의 장르가 될 것이다.
사실 장희빈은 정치적 희생양일 뿐이다.
장희빈을 악마화 시킨 것은 당쟁에서 승리한 노론이다.
하지만 줄리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리고 그 뒤는 검찰, 재벌, 언론으로 이어지는 기득권 카르텔이 있다.
다시 돌아와 이야기 하자면 나에겐 한강은
삼부토건이란 글씨와 건설장비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차창밖으로 수없이 많은 모래톱을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모래톱.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한강 개발로 인해 한강은
거대한 호수로 변하였다.
저자도를 비롯한 수많은 섬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연성이 사라져가는 그 끄트머리에서 동생은 한강 위로
떠다니는 모래톱을 보았다.
내겐 전혀 남아있지 않은 기억.
한강은 내게 타자화된 공간이었다.
이십대 초반 한강에 갈려고 마음 먹었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갈 수가 없었다.
지금에야 한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하며 한강에 이르는 길을 안다.
언젠간 허물어야할 신곡보와 잠실보.
그리고 콘크리트로 된 수많은 제방들.
한강이 하루빨리 자연성을 회복해 우리에게 돌아올날을 기다린다.
20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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