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한다.
지지후보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왜 그 후보여야 하는지 강력히 설명하다보면
오히려 표가 떨어져 나간다.
그 열정에 감복하기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저울질
하고 있을 때 강력한 지지권고는 다른 후보에게로 마음을 기울게 한다.
종교역시 마찬가지다.
믿음이 지나쳐 자기가 믿는 종교를 강력히 권유하면 거부감이 든다.
스무살 때 였나?
어떤 사정으로 비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고 걷게 된 대학
4년생 누나가 있었다.
귀여운 얼굴의 누나는 처음 본 내게 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지 길을 걷고 버스를 기다리며 참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누나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잖아도 믿지 않는 신을 그렇게 강력히 들이대니
오히려 거부감만 들었다.
이후 만났던 개신교인들의 행태는 그 때 누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신교인들의 성경에 대한 과도한 찬사 역시 거슬렸다.
졸리기만 한 이 책을 보느니 차라리 선데이 서울을 보는 게 나았다.
머리에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니다.
의미없는 문자가 인쇄된 종이덩어리일 뿐이다.
아... 잠이 오지 않을 때 수면제로는 최고였다.
대신 사회문제에 헌신하는 목회자를 보노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사드가 왜 한반도에 배치되어선 안되는지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하는 한 목사의 인터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울켝해지고 말았다.
인류가 지향해야될 가치를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저런 분이 삶의 지침으로 삼는 책이라면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들으니 극성 열혈 문빠들이 표를 갉아먹는다는 소리가 들린다.
문재인을 좋아하고 그가 이끄는 대한민국이 잘되길 바라는 나로선 마음이 아프다.
그에 대한 사랑이 독이 되어 돌아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예수를 입에 전혀 올리지 않아도 삶이 훌륭하면 그의 믿음을 존중한다.
나아가 그가 믿는 대상을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예수를 입에 달고 살아도 삶이 비루하면 예수는 조롱거리가 된다.
대한민국이 상식과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문빠로서
고민이 되는 이유다.
삶으로서 왜 문재인이어야 하는지 증거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 소리 안하고 투표날 조용히 기호 1번에 도장이나 찎어야겠다.
이 것이 삶이 그닥 훌륭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2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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