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팔고 시골에 살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었다.
문제는 집을 내놓아도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오산에 있는 18평형 아파트에서 계속 살았으면 나가는 돈이 얼마 안돼
편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비록 서민 아파트지만 의정부에 있는 집은 과분했다.
빌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빌려 샀더란다.
수입이 하나도 없던 나로서는 엄청 무리를 한 것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되지도 않는 만화를 그렸다.
매달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허덕였다.
대신 갚아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12년을 버텼다.
그런데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갚으라는 원금이 달이 갈수록 늘어난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에겐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무명작가인
내게는 쓰나미 파고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최후의 보루라 생각했던 장애인 활동보조인 일을 해야하나싶었다.
이런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놨더니 일단 집은 지켜야 한단다.
집을 내놓으면 그나마 알량하게 있는 자산도 손안의 모래알처럼 빠져 나갈 거란다.
집이 없으면 노후에 모기지론으로 연금처럼 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곳은 딱 하나였다.
콘텐츠 진흥원에 지원한 다양성 만화와 창작초기다.
휴...
죽으란 법은 없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성에 이어 창작초기도 선정이 됐다.
지원 금액이 크진않지만 올 한해 내가 그리고 싶어하는 만화를 그리며 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집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전망만큼은 대한민국 상위 5% 안에 들던 이 집.
나는 이 집을 꼭 지키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니 선정된 작가도 있지만 떨어진 작가가 더 많다.
다들 어려운데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미안하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또 그렇다.
그동안 페북에 미주알 고주알 내 일상을 얼마나 많이 올렸던가!
특히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해선 빛의 속도로 올렸었다.
신상의 변화가 있으면 알리는게 맞다.
덕분에 연말까지는 꼼짝없이 작업만 해야하니 이 또한 감옥살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희망을 꿈꾸는 그런 감옥이다.
아래 그림은 '창작초기'에 지원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20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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