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연출
내 첫 책인 <<정가네소사>>가 나온게 2012년.
임진왜란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듯 나는 내 삶을 <<정가네소사>> 출간
전과 후로 나눈다.
기획물과 동화책 삽화를 제외하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 한 권도 없는 스스로 작가라
일컫기가 무안한 2012년 이전의 일이다.
어느날 박재동 선생님께 연락이 와 서촌에 있는 지식산업사를 찾아갔었다.
이희재선생님 그리고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후배 박성린과 함께였다.
지식산업사는 지금은 이름을 크게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과거엔 꽤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였다.
대표님 성함은 김경희.
이름만 들으면 여자인 줄 알겠지만 남자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인텔리로 해방공간과 4.19를 생생하게 증언하셨다.
지식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김경희 대표님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 한 권도 없던 나에 비해 여덟살 아래인 박성린은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 있어 대표님께 사인을 해 드렸다.
무안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 박재동 선생님의 나에대한 소개는 참으로 고마웠다.
'용연이 만화는 연출이 좋습니다.'
의외의 말씀이었다.
객관적인 평가는 알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말은 사람을 규정하는 속성이 있다.
누군가 어딴 사람을 향해 "심지가 굳은 사실이야" 하면 심지가 굳은 사람으로 보이고 "사람이
자발이 없어" 하면 자발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후 나는 스토리와 그림은 부족해도 연출력은 좋다고 자부하였다.
사람들이 내 만화를 보고 물흐르듯 술술 읽힌다고 할 때 자부심은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지난 4월 사람 ing에서 있었던 <<1592진주성>> 북콘서트 때 손님으로 오신 박향미
작가님께서 내 만화 연출이 좋아 물흐르듯 잘 읽힌단 말씀을 했다.
독자들이 만화를 볼 때 평가를 내리는 건 크게 두가지다.
'스토리'와 '그림'이다.
만화에서 스토리와 그림은 재미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요소다.
재미란 뭔가?
예술의 궁극적 목표다.
다른 말로는 감동이라 한다.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라도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 것은 예술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화를 평할 때 빠뜨리는게 있다.
연출이다.
아무리 훌륭한 스토리와 그림도 연출이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무미건조한 작품이 된다.
의심의 여지없이 몰입해 읽게 만드는 만화.
그 만화의 숨은 공로는 연출이다.
다만 연출은 공기와 같아 독자들은 잘 느끼지를 못한다.
종종 연출이 좋지않아 중간에 책장을 덮어버리는 만화를 본다.
흐름이 부드럽지 않은 것이다.
앞뒤 상황이 이해가 되지않아 앞장면을 다시 봐야하는 만화가 의외로 많다.
당연히 이런 만화들은 도태가 된다.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만화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연출이 좋다'이다.
다만 공기와 같아 일반 독자들은 잘 느끼지를 못한다.
박재동 선생님께선 일반 독자들 눈엔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점을 보고 칭찬해주신 거다.
202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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