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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정치, 사회

야쿠르트 아줌마

by 만선생~ 2025. 6. 21.
스무살. 만화가 선생님 문하에 있을 때다.
선생님이 주신 야쿠르트를 마시며 야쿠르트 광고모델인 태현실 아줌마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께서 놀라시며 묻는다.
“태현실이 아줌마야? 하긴 너한텐 아줌마겠다.”
나중에 알았지만 태현실은 70년대 인기절정의 티브이 드라마 “여로”의
주인공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설현 손예원 같이 젊음을 상징하는 스타였다.
물론 나도 집에 티브이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여로”를 보았을 테지만 말이다.
선생님께서 현재의 일처럼 말씀하시는 육체파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나
오드리 햅번 또 한국일보 사장에게 시집간 여배우 문희 얘기는 내게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과거의 일이었다.
20년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난 사람의 메울 수 없는 문화적 차이였다랄까?
어린 시절 아버지가 6.25 얘기를 하시거나 왜정 때 얘기를 하시면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로 생각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세월이 흘러가지 않고 멈추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는 영원히 서른 여덟 살이고 나는 열한 살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면서 어머니는 서른 아홉 살이 돼있고 나는 열두 살이 돼 있었다.
그래도 나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는 절대 마흔살이 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계속 열두살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자꾸만 믿음을 자꾸만 허물었다.
나는 열세살이 되었고 열네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당시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지천명을 앞두고 있다.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된 한 이십대 청년에게 이십대 내가 들었던 노래를 부르고
재밌게 보았던 영화를 이야기 하면 멀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본다.
청년은 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를 상상하지 못한다.
청년에게 그 같은 얘기는 내가 아버지에게 일제시대와
6.25 얘기를 듣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득한 과거의 일일 뿐이다.
화가 나기도 한다.
80년 5월 광주를 몰라?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그 지난한 역사를 모른단 말이야?
전태일 열사는?
나의 한숨은 땅이 꺼지도록 깊다.
너만 유독 그런 거야?
아니면 너희 젊은 세대 모두가 그런 거야?
적어도 난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충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공부를 해서
알고는 있었다고.
내가 겪어온 시대를 알지 못한다고 상대를 타박하는 것은 참 덜 떨어진 일이다.
나는 청년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를 모른다.
청년이 부르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게임과 애니 얘기를 하면 먼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시대를 호홉해야하는 작가인데도 말이다.
함부라비 비문에 써있었다던가!
요새 어린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라고.
비문에 적혀 있진 않지만 그 어린 것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아저씨 꼰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무세요.
그러나 결국 그 어린 것들 역시 꼰대가 되었고 그 유전자들 또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며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세대간의 갈등은 우리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갈수록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청년인구는 줄어든다.
소수의 청년이 다수의 노인을 부양해야하는 사회!
앞 세대의 삶을 모른다고 짐짓 나무라는 투로 말하던 내가 부끄럽다.
아랫세대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할텐데.
그래도 80년 광주를 모르는 건 너무한다.
네가 누리고 있는 삶이 목숨을 버려가며 군인들과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들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거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진부한 경구가 자꾸만 귀에 맴도는 건
왜일까?
그러고보니 야쿠르트 아줌마는 할머니가 되어 있겠네.
세월. 참 빠르다.
 
201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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