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스무살이던 나는 아무 곳에도 적을 두지 않은 백수였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지도 않았고 돈을 벌기위해 공장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무얼 어떻게 쓰고 그려야할지를 몰라
그저 하루하루 멍하니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갑작스레 날이 더워져 반팔 티셔츠를 입기 시작한 그날.
나는 만화도구를 사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려
지하철 출구로 나왔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있었다.
시위대였다.
그들은 주먹을 높이 치켜 들며 호헌철폐와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고
학살원흉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특히 여자들 목소리는 남자들 목소리보다 몇 옥타브가 높아 더멀리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는 마치 팽팽하기 이를데 없는 피아노줄을 연상케 했다.
예상대로 시위대 저편엔 수많은 전경이 닭장차와 페퍼포그를
뒤로하고 늘어서 있었다.
갈수록 불어나는 시위대.
시위대는 거리를 점거했고 교통은 마비됐다.
구경꾼으로 서있던 나는 조심스레 시위대를 따라 도로 한 가운데 들어섰다.
흥분으로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나는 시위대처럼 주먹을 움켜쥐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지 못했다.
그같은 행위는 내게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주먹을 쥐고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기 시작하긴 했지만 목소리는 자꾸만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왜냐면 나는 시위대의 다수를 이루는 학생도 아니었고
민주화단체에 소속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또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간절히 열망했다.
하지만 시위대에 섞여 구호를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퍼퍼퍽.
거리는 한순간에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고 시위대는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전경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더불어 백골단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해왔다.
나는 붙잡히지 않으려 정신없이 달아났다.
한참을 쫓겨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시위대는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일부 시위대는 보도블록를 깨드려 경찰을 향해 던졌고 나역시 따라 던졌다.
내가 던진 돌은 전경이 있는 곳에 한참을 못미쳐 떨어졌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게서 최루탄 냄새가 난다고 눈물을 쏟으며 기침을 하셨다.
이튿날 동아일보 1면 2면 3면에 시위대 모습이 실렸다.
기분이 묘했다.
비록 수많은 사람가운데 하나였지만 분명 저 안에 나의 모습도
있을 것이었다.
오후가 되어 나는 시위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굼해 다시
종각으로 나갔다.
시위의 양상은 전날과 다를바 없었다.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였다 흩어지고.
나는 거리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학생 시위대 곁에 다가가 함께
주저앉았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학생 한 명이 날더러 어느 학교 학생이냐고 물었다.
순간 나는 멋적고 무안해 대답을 얼버무렸다.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대학생에게만 허락된 게 아니건만 그랬다.
......................
유시민씨가 쓴 나의 한국현대사란 책을 보다가 나의 스무살 때가
생각나 써봤다.
201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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