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출신 여행작가 이영철 선생님께서 "제주올레 인문여행"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영광스럽게도 4코스와 7코스에 제 책 "목호의 난"을 꽤 길게 기술해주셨네요.
제주가 고향이지만 제 책을 보고나서야 목호의 난에 대해 알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사에서 드러나있지 않은 사건이지요.
단일민족국가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한 이야기거든요.
책이 나오기 전 서면 인터뷰를 요청하셔서 편하게 생각하고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헌데 편집없이 전문을 그대로 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글을 꾸며 썼을텐데...
아래 내용은 제가 쓴 인터뷰 내용입니다.
“목호를 처음 알게 된 건 이영권 선생의
〈새로 쓰는 제주사〉를 통해서였어요.
역사를 좋아했고 그래서 남들보다 역사를 제법 안다고 자부하던 저였지만
충격이었죠.
제주 4.3과 판박이처럼 닮은 사건이 640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놀라웠습니다.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서 가려진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몇 년을 만화 원고지와
함께 씨름했었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작업은 하면 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떻게 작업을 마쳤는지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작업을 하며 참고했던 1차 사료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공민왕편이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정의현 편도 도움이 되었고요.
조선 후기 제작되었지만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제작한 대동여지도도 작업하는 기간
내내 가까이 둔 자료입니다.
목호가 최후를 맞이한 범섬은 한 때는 사람이 살기도 했다는데 대동여지도엔 凡이란
한자가 표기돼 있습니다.
법환포구에는 낚시꾼들을 범섬까지 태워다주는 작은 배가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부탁을 하니 2만5천원에 섬을 한 바퀴 돌아주었습니다.
포구에서 섬까지 걸리는 시간 약 5분.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 압도당했습니다.
넋을 잃었지요.
섬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 못했거든요.
끝닿을 데 없이 높은 주상절리와 해안 동굴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리고 640년 전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던
목호들을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들은 무슨 죄가 있었겠습니까?
태어나보니 아버지와 형들이 말 기르는 목동이었고 원나라는 그들의 조국이었습니다.
세계제국이었던 원이 기울자 그들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됐던 거지요.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 서 있던 그들. 그들은 큰 그림을 볼 줄 몰랐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강경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고요.
저는 한국인으로 공민왕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어느 편에
설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려 편에 서겠지요.
하지만 작가는 달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민의 입장에 서보는 겁니다.
고려와 몽골 모두 외부세력이었고 오랫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동질화되었습니다.
당연히 지금의 제주도민에겐 몽골인들의 피가 많이 섞여 있을 것입니다.
단일민족의 신화는 이를 부정하겠지만요.
저는 뭍사람이지만 제주도를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개발논리에 의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4.3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섬으로 영원토록 남길 바랍니다.
지난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창입니다.
같은 올레길을 걸어도 역사를 모르면 범섬은 한낱 멀리 떠있는 조그만 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역사를 알고 보면 다릅니다.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는 섬입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역사를 생각하고 제주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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