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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해외 7 러시아

우수리스크 가는 열차 안에서

by 만선생~ 2025. 8. 20.

 
 
2020.2월.
윤형식 선생 안내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 가는 열차에 올랐다.
우수리스크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다.
일제에 나라를 뺏앗긴 뒤 삶의 터전을 잃은 고려인들이 모여들어 수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엔 조국 독립의 꿈을 안고 찾아든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최재형 이상설 선생 같은 분들이 그렇다.
윤형식 선생이 말하길 고려인박물관 최재형선생 생가
이상설선생 기념비 그리고 발해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이라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까지는 열차로 두시간.
거리가 길어어인지 열차 안에선 두세명 단위로 결성된 밴드들이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수입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나로선 참 생소한 풍경이었다.
두 정거장 쯤 지났을까? .
중년의 한 여성이 통로를 지나 내 앞에 있는 좌석에 앉더니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제법 두꺼운 책이었는데 그 녀는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책에 완전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를 헤아리긴 힘들었다.
환갑은 넘겼을 것 같은데 칠순을 넘겼다고는 할 수 없고.
여하튼 지적인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대학 교수였을까?
아니면 무슨 연구원 출신일까?
읽고 있는 책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 줄아는 러시아말은 인삿말밖에 없었다.
아니 인삿말조차 제대로 못했다.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고혹적이었다.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이야기와 더불어 이미지를 생산하는 만화 작가로서 그녀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 싶다는
욕망이 내내 꿈틀댔다.
나는 실례를 무릎쓰기로 했다.
멀리있는 풍경을 찍는 척 하며 여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인의 모습은 곧 기억 속에 사라져버릴 터였다.
어딜 가나 좋은 이미지를 보면 담아내고야 나는 나!
이 또한 집착이라면 할 말은 없다.
만약 그녀가 책이 아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더라도 그렇게 끌렸을까 싶기도 하다.
저물어가는 종이책 시대에 멋진 그림을 만들어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아마도 그녀가 러시아말로 번역된 이글을 읽는다면 빙긋이 웃어 넘겨 주시리라 생각한다.
 
 
202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