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읍성













1999년 9월 오토바이로 전국여행을 하며 고창 읍성을 둘러보았다.
모양성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읍성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였다.
더위가 한 풀 꺽이긴 했지만 여전히 더웠고 더위에 지친 나는 쉴 곳을 찾았다.
그리하여 찾은 곳은 고을 사또의 집무처인 동헌.
나는 이내 동헌 대청마루에 올라 큰대자로 누웠다.
사람이 없어 눈치 볼일도 없었다.
마침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였다.
나는 대청 마루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필름값이 아깝지만 이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오늘 그 사진을 보니 99년 9월 7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때 보았던 건물을 다시보니 전혀 고색창연하지 않다.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모두 복원한 건물이어서다.
대들보부터 더운나라에서 수입한 나무란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다만 24년 전의 나는 그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던 거다.
똑같은 사람의 손길인데 조선시대 장인이 만든 집과 현대인이 만든 집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목재도 다르고 마무리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래서 현대에 복원한 건물들이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난 뒤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면 고개를 가로 저을 수 밖에 없다.
80년대 초 뿌리깊은나무에서 출간한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고창군 편에 따르면 고창읍성엔 스물한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 있는 건물은 공북루와 작청 두 개 뿐이었다
그 것도 건물 일부만...
현재까지 복원된 건물은 공북문 풍화루 등양루 동헌 내아 관청 객사 작청 향청 성황사 장청 옥까지 열두개다.
아홉개를 더 복원해야 읍성의 본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복원하고 싶어도 자료가 없어 못할 것 같다.
그나마 관아 가운데 가장 잘 복원돼 있는 곳이 고창읍성이라 하니 관아의 실태가 이렇다.
모양성이라 불리는 고창읍성엔 한가지 풍습이 내려오는데 바로 여인들의 성밟기다.
성곽길을 세 차례 돌면 병이 없어지고 죽어 극락에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한바퀴로 족했다.
그 것도 성벽공사가 있어 일부 구간은 돌아보지 못했다.
복원된 건믈들이 고색창연하진 않지만 고창읍성은 꼭 한 번 와볼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고창읍성의 자랑은 복원된 건물이 아니라 숲이었다.
소나무 대나무 상수리나무들이 울울창창하여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번뇌가 사라질 듯 하였다.
202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