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사
2005년 아산 현충사에서 가 찍은 현충사.
1932년 동아일보가 성금을 모아 지었다.
현판은 숙종 어필.
몇 년 전 조선어학회 사건을 소재로 만든 <말모이>란 영화를 봤다.
극장에 최루탄을 뿌렸나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극로 선생 역할을 맡은 윤계상은 어찌나 잘생겼던지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지경이었다.
그해 본 최고의 영화다.
한데 흥행도 되지 않고 평론가들의 평도 그닥 좋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본 나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페친이신 주환선 선생의 조선어학회 그림을 보고 그 장소가 다름 아닌
현충사라는 것에 놀랐다.
1935년 조선어학회에서 수많은 장소 가운데 아산 현충사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별한 뜻이 있었던 거다.
반드시 독립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그리고 독립의 시작과 끝은 모국어인 우리말이다.
독립 운동가들을 고집스럽게 그리고 있는 주환선 선생!
선생의 그림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흑백이었던 조선어학회 사진이 선생의 손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대로가 아니다.
재해석이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 난다.
빨리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다.
2005년 찍은 현충사 사진은 딱 한 장이다.
지금 같으면 여러 각도로 최소 10장은 찍었을테지만 그 때는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한 장으로 족했다.
그래서 참 아쉽다.
지금이라도 다시 현충사에 달려가 다시 가서 찍고 싶다.
박정희는 이순신 성역화 사업을 통해 자신의 친일 경력을 가리려 했다.
나아가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화 하려했다.
1965년 시멘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현충사!
박정희는 왕이라도 된 듯 현충사 현판 글씨를 썼다.
졸렬한 필치로.
2005년. 박정희가 세운 현충사 건물 내부는 빗물이 새 양동이에 물을 받고 있었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영혼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건물.
한마디로 날림 공사다.
건물을 지으며 뒷 돈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 같다.
1932년 성금을 모아 세운 현충사가 백 배 더 낫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박정희가 세운 현충사를 찾아 향을 사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