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년 1월 1일.
서른 한 살이 된 나는 어느 정자 앞에 서 있다.
사진 속의 나는 분명 정자 앞에 서있다.
지금은 입지 않는 청바지를 입고서.
언젠가 고교시절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중기 녀석이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는데 이게 뭔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녀석과 함께 어디를 갔던 모양이다.
사진 속의 정자는 참으로 아름답다.
오래되고 격이 있어 보인다.
이런 곳에 몇날 며칠 머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디지?
정자 옆으로 쳐져있는 철책을 보면 해안이 분명한데 기억에 없다.
아마도 서해안에 있는 정자이지 싶다.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이니 말이다.
오늘 원고를 그리기 위해 옛 건축 사진을 찾던 나는
이 사진을 보며 내 기억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나는 1998년 1월 1일 어디를 갔던 것일까?
장소를 알아내는 데는 오래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액에 걸려있는 해암정을 검색해보니 금세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생각과 달리 정자는 서해안이 아닌 동해안에 있었다.
정자는 강원도 유형 문화재로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지었고 중종 때
중건한 뒤 정조 때 중수했다고 한다.
참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처럼 차도 없었고 여행은 일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하던 시절.
모처럼 간 여행이었을텐데 기억을 못하다니...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걸까?
말못 할 트라우마가 있어 그 때의 기억을 삭제해버린 건 또 아닐까?
아니다.
시커먼 사내 녀석과 간 여행이다보니 딱히 기억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이다.
여자랑 갔더라면 시시콜콜한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여겼을테다.
어쨌든 인터넷 환경에 힘입어 봉인된 기억 한 조각을 맞추었다.
정자가 있는 동해시로 여행을 가고 싶다.
정자에 올라 넘실거리는 문 뒷편으로 동해바다를 보고 싶다.
그나저나 정자 앞에 정우성이 서 있었으면 얼마나 폼이
났을까?
엄니 아부지....
이제 원망 안할께요. ^^“
2017.11.9
'여행 6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윤희순 선생 생가 가정리 가는 길 (1) | 2026.01.09 |
|---|---|
| 강원 감영 (1) | 2025.12.30 |
| 강릉 (0) | 2025.09.06 |
| 강릉가는 KTX 안에서- 일본 만화 <안녕이란 말도 없이> (0) | 2025.09.06 |
| 강원 감영 2 (2)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