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희순> 강연
강연을 하라면 늘 긴장되고 떨린다.
오늘도 그렇다.
특히나 초등학교라니.
무려 나이가 40여년 차이가 나는 초등학생들이 내 말을 이해는 할까?
거꾸로 초등학생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일단 강연을 왔으니 물어는 보자.
“책 읽은 사람?”
책을 읽을 땐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 대한 아무 정보없이 읽는 것보다 작가에 대해 알면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먼저 책날개에 있는 작가 프로필로 읽어보자.
부모님 나이 물어본다.
내가 부모님보다 나이가 훨 많다. ^^
첫 책을 낸 것은 45살.
남들은 작가생명이 끝나 은퇴할 때 첫 책을 냈다.
다음으로 목호의 난
의병장 희순
글작가와 처음으로 협업해 책을 냈다,.
친정가는 길
일요신문 연재
진주성 원고를 보여주며
내년엔 작업이 많이 쌓여 세권 정도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만화와 웹툰의 차이.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나.
나는 아직도 만화를 그리고 있다.
도구 소개
펜 잉크 만화 원고지 자 화이트수정액 붓펜
작품은 두 가지로 나뉜다.
스스로 기획한 작품과 누군가로부터 의뢰받은 작품.
김홍도 고흐 박수근
미켈란젤로 천지창조는 베드로성당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렸다.
한국만화의 금자탑으로 남아있는 허영만 선생의 “오! 한강”
은 안전기획부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병장 희순은 성남문화재단으로부터 32명의 작가와 함께
의뢰를 받았다.
다른 분을 그려달라 했는데 친일파들이 얽혀있어
그리기가 곤란.
스스로 그릴만한 인물을 찾았는데 눈에 띈 것이 바로 윤희순이었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리고 싶었고
당시 조선시대를 무대를 한 만화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살았던 선생이 적격이었다.
다른 작업으로 바쁜 상태라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던 권숯돌 작가에게
스토리를 의뢰했다.
처음 스토리 작가와 협업인데 호흡이 잘 맞았다.
만화가와 스토리작가의 생각이 달라 싸우는 예가 많다.
작품의 승패는 자료조사에서 갈린다.
심옥주 선생이 쓴 윤희순 평전과
윤희순 선생이 숨을 거두기 전 쓴 일생록을 기본으로 하고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역사인물을 그리기 위해선 답사가 필수다.
권숯돌 작가와 강원도 춘천 황골 가정리 여우내골
강원도박물관을 방문하고
따로 의병이 처음 일어난 제천 자양서사를 찾아갔다.
문화재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생가엔 먼 친척분이 살고 있었는데 윤희순 선생의
첫날 밤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문틈으로 첫날 밤을 궁경하다 그만
지붕을 태워버리고 말았다는.
현장 답사를 가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윤희순 선생의 삶 가운데 반은 중국에서의 활동이다.
성남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5박6일간 중국의 항일무장독립전적지를
답사했다.
스토리
콘티작업
데셍과 펜터치
스캔 받아 채색 작업.
다음 웹툰에서 연재
성남문화재단과는 24회 250페이지 분량을 계약했는데
윤희순 선생의 삶을 담아내기엔 분량이 턱없이 부족.
2회를 추가해 26회로 연재를 마무리.
연재를 끝내고도 추가 작업을 했는데 420페이지가 됐다.
170페이지를 초과해 그려버린 것이다.
추가 원고를 그린다고 해서 원고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좋은 책이 나오기 위한 조건.
좋은 작품과 함께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출판사에서 국회도서관까지 찾아가 검토를 해 오류를 최대한 줄였다.
종이질도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책이 나오고 몇 개월 뒤 춘천 가정리에 있는 윤희순 의사 묘소에 가
인사를 드렸다.
그 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평소보다 몇 배 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만화는 길고긴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리면서 많이 힘들었다.
워낙 그려야 할 것이 많아서 힘들고 나아가
독립운동가의 삶이 고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의 아들인 유돈상이 고문을 받는 장면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다시는 이런 장면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본인은 가족의 희생까지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해야하나 싶었다.
나는 말리고 싶었다.
그만하면 할만큼 했으니 이제라도 편히 살라 말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윤희순 의사와 그의 아들들은 묵묵히 가시밭길을 향해 걸었다.
발에 피멍이 들고 뼈가 다 드러나고 있음에도.
자화자찬이지만 독립운동가의 삶을 잘 그린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히 첫 장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온 가족이 만주로 떠나는 장면을 그릴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만화를 그리면서 놀라웠다.
삼강오륜과 남녀칠세부동석을 내세워 여성들의 활동을 지극히 제한했던
조선말 어떻게 윤희순 같은 이가 나올 수 있었는지?
조선시대는 혹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훨씬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었을까?
시아버지인 유홍석과의 관계도 놀랍다.
며느리인 윤희순은 평생에 걸쳐 시아버지를 존경했고 시아버지인 유홍석은
며느리를 아꼈다.
일생을 통해 존경할 만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윤희순 의사는 그런 면에서 행운아다.
작품에서 드러나듯 윤희순 의사는 작사가다.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인다.
요샛말로 싱어송 라이터다.
거기다 노래를 귀신같이 퍼트린다.
이를 선전 선동이라 하는데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꼭 필요한 능력이다.
중국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윤희순 선생은 연설을 잘해
‘연설 잘하는 윤교장’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남들 앞에 나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되 나의 의견을 차분한 말로 때론 격정적인 말로
이해시키고 행동을 끌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꼭 필요한 능력이다.
뿐만 아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일생록은 문장이 아주 뛰어나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일목요연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일생록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자료인 한편 국문학사에 남을 뛰어난 일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일기를 써라.
일기가 아니어도 좋다.
뭐든 써라.
머리가 좋아지는 지름길이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12월 3일 대전에서 후손을 만났다.
그분은 운좋게 문중의 양자로 들어가 대학 교육을 마쳤다
공무원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았다.
부채의식이 있다.
다른 자손은 교육을 못받고 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서다.
그 때문에 고전번역원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하신단다.
집안 어른들이 남긴 문집과 편지를 정리 번역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공부하면 알게 된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파들은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사회의 기득권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반대로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해 돈이 없었고 그래서 교육을 못 받았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그래야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너나 없이 발 벗고 나선다.
친일파들이 계속 잘먹고 잘사는 사회에서 누가 나서겠는가!
질문 받을게요.
질문이 아니라도 책을 보며 느낀 소감을 말하면 됩니다.
없어요?
대답
책에 싸인~~~
그리고 함께 찍는 사진~~~
2021.12.10. 만화가 정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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