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만난 고향사람 강필 아우님이 밥도 사주고 숙소까지 잡아준다.
되도록 신세를 지지 않으려하지만 어쩔 수없이 신세를 진다.
이튿날 아침.
모텔서 나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간다.
전날 강필 아우님과 술을 한잔하며 차를 먼곳에 세워두었기에 한참을 걸어야한다.
덕분에 어머니가 나고 자란 김제 시내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김제 중앙초등학교였다.
어머니가 5학년까지 다니던 학교다.
그 이상은 다니지 못했다.
전쟁이 나 세상이 어지럽고 살림도 어려워서다.
외할아버지는 다섯살에 외할머니는 열아홉에 여의였다.
스무살에 만난 남편 역시 배움이 짧았다.
남편의 최종학력은 간이학교 2학년.
요즘으로 치면 초등 2학년이다.
그나마 남편은 할아버지 무릎아래에서 한학을 배워 왠만한 한문은 읽고 쓸 수 있었다.
돈도 빽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부부의 삶이 어떠했으리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았다.
그리 하여 내 어린날은 늘 우울했다.
가난이 자꾸만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가난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르는 가운데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1911년 학교가 세워졌다는 조형물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운동장은 드넓었다.
운동장 한켠에 동무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단발머리에 한복차림이었다.
가슴엔 김정숙이라 써있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오래된 건물 앞에 섰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학교 강당이었다.
일제 강점기 세웠졌던 여느 학교 건물들과 같은 양식이다.
고풍스러우면서 단단한 느낌을 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기도 오산 누나집에 들러 어머니께 물으니 강당에서 합창도 하고
미술활동도 했다고 한다.
해방이 된 직후다.
물론 목조로 지은 교실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어머니의 어린날 추억이 서려있는 학교를 뒤로하고 다시 시내를 걷는다.
어디선가 숨은 볼거리가 나타나길 기대하며.
202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