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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북도

김제 서낭당길

by 만선생~ 2026. 1. 17.

 
 
인력거도 다니고 우마차도 다니고 이따금 자동차도 다니는 넓은길이었다.
전쟁 때엔 탱크가 밀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이 길을 통해 김제역으로도 가고 익산으로도 가고 전주로도 갔다.
길따라 상점들이 늘어서 손님들을 반겼다.
하지만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 빨리 다닐 수
있는 길을 원했다.
공무원들은 토건마피아와 유착돼있었다.
민원엔 부지하 세월이지만 도로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그리하여 길 너머엔 4차선 도로가 새로이 생겼다.
이제 차를 타면 순식간에 김제 역에 닿았다.
김제 시내는 물론 전주와 익산도 이제 먼길이 아니었다.
4차선 도로 길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이 길은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주머니가 빈 노인들만 다녔다.
누가봐도 퇴락한 길이다.
퇴락한 길을 따라 김제 경찰서 방향으로 가던 중 한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해안 가까이 많이 자라는 곰솔이다.
김제 황산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도 곰솔이 많다.
붉은 소나무 반 곰솔 반이다.
무엇보다 걸음을 멈추게 한 건 서낭당길이라 써있는 도로 표지판이었다.
아... 이 쯤에 서낭당이 있었구나.
옛날엔 그랬다.
마을 어귀 고갯길에 서낭당이 있어 지나는 이들은 발길을 멈추며 빌었다.
안녕과 더불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길.
일본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지죠상이었다.
길 곳곳에 오지죠상이 있어 안녕과 평화를 빌었다.
대단한 교리가 있는 것도 성직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민간신앙이다.
일본 사람이 아닌 나조차 발걸음을 멈추고 오지죠상에게 빌었다.
여행 중 별 일 없게 해주세요.
오지죠상과 같은 존재가 서낭당이다.
조선시대엔 마을마다 하나 쯤 다 있었다.
내 고향 김제 용지에도 당너머란 마을이 있어
당집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신작로가 생기면서 당집은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개발광풍으로 당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한 두곳 보일 뿐이다.
그 것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종교가 없는 나도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하다.
전지전능하지 않아도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주지 않아도 좋다.
길을 걷다 잠시 일신의 평안과 소원 한 두개쯤을 빌고 싶다.
들어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 자체로 편하고 좋다.
조선시대엔 삼남대로라 불렸고 일제강점기와 6~70년대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넓었던 길.
하지만 지금은 퇴락해 있는 길에서 사라져버린 서낭당을 찾는다.
 
20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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