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영웅문>
군대 이야기다.
1989년 신남역(현재 김유정역)이 바라다보이는 춘천 12보급대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다.
주특기가 방공포병으로 포상에서 두시간씩 경계 근무를 섰다.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
나보다 15개월 일찍 군에 들어온 강인훈 병장은 철모를 벗은 채 자기가 읽은 무협소설
이야기를 하였다.
김용이 쓴 <영웅문>이다.
나도 TV 광고를 통해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강인훈 병장은 <영웅문>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신이 났다.
두 시간 내내 숨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얼굴 표정도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들이 그저 그랬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군에 제대해서도 <영웅문>을 읽지 않았다.
김용이 쓴 다른 작품을 손에 든적이 있는데 2~30페이지 읽고 책장을 덮었다.
표현 방식이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소호강호> <동방불패> <절대쌍교> <서검은구록> <녹정기>같은 김용 소설이
원작인 홍콩영화들을 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눈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장풍을 쓰는 것부터 말이 안됐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다단한데 무술실력 하나로 천하의
패권을 다툰단 말인가!
하지만 간혹 김용의 소설을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몇년간 사귀었던 은화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영웅문의 원제인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광팬으로 책을 모두
비치해두고 있었다.
은화씨보다 세살 위인 언니와도 왕래를 하며 지냈는데 언니 역시 김용
소설 팬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소설이라니.
나는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싶어 은화씨 집에 비치된 <사조영웅전>을
펼쳐 들었다.
몇 페이지 넘겼는데 읽을 마음이 안들었다.
대신 <신조협려> 첫머리에 인용한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시는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애송하는 한시다.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새야! 너희들은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느냐!
歡樂趣 離別苦 就中更有癡兒女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는데,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暮景 隻影爲誰去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온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나중 들으니 80년대 고려원에서 출간된 소설 <영웅문>은 정식으로
판권을 사서 출판한게 아니었다.
무단으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정말이지 어이없는 일이지만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희미하던 시절이다.
국제 저작권 협약에 가입이 되기 전의 일이다.
<영웅문>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니까 고려원은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범죄다.
김용 입장에선 끔찍한 일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다른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출간했을테다.
서양엔 마법을 매개로 한 환타지 소설이 있다면 동양엔
무술을 매개로 한 무협지가 있다.
판타지 소설의 태두는 <반지전쟁>을 쓴 돌킨이고 무협지의 태두는 김용이다.
이건 숫제 취향의 문제지만 판타지소설을 읽은 적 없다.
돌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도 보다 말았다.
집중해 볼 수가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판타지 영화라 할 수있는 <천녀유혼> 최소 열 번 이상은 봤다.
<천녀유혼>의 모티브가 된 포송령 소설 < 요재지이>도 사서 읽었다.
도교적인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202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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