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사귀었던 사람이 살던 집.
정확히는 집 옆에 있는 세 칸짜리 정자다.
가운데가 대청이고 대청 양 옆으로는 두개의 방이 딸렸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
무엇보다 근사한건 누마루가 길게 나있다는 것이다.
증조 할아버지께서 인생 말년인 1923년 지으셨다고 한다.
"정자에서도 지냈겠네?"
"그럼 거기서 숙제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놀았지."
부러웠다.
이런 집에서 살았다니.
단칸방에서 다리조차 뻗지 못하고 잠을 자야만 했던 내 어린날과 비교되었다.
그녀가 이 집에서 살았던 건 고등학교 때까지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방학 때나 가는 곳이 되었다.
명문 양반가의 자손으로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지만 방탕한 아버지에 의해 집안은 급전직하했다.
찾아오는 건 빚쟁이들 뿐이었다.
다행히 집은 팔지 않았다.
장자상속의 원칙에 의해 집은 큰오빠 차지가 되었다.
관리는 안하면서 팔려고 내놓지도 않는다.
재작년 그녀가 살던 도시로 강연을 가게 되었다.
생각난 김에 그녀가 살던 집에 들렀다.
대문에 자물쇠가 채워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순순히 알려주었다.
집은 먼지로 가득했다.
기둥은 나무껍질이 일어 보기가 힘들었다.
집을 지은 증조할아버지는 한말 ** 의진을 이끌던 의병장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가 그 공을 인정해 포장장을 추서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써있는 포장장은 먼지 속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점점 망가지고 있는 집.
보다못해 빗자루를 사와 먼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쓸 생각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네시간을 훌쩍 넘겼다.
먼지가 한보따리였다.
더 쓸고 싶었지만 마냥 있을 순 없어 집을 나섰다.
나는 빌었다.
바라건대 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들어와 살기를. 그래서 집이 잘 보존되기를.
20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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