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김제 소라단(신풍리) 이모집에 가면 달력이 걸려 있었다.
한 중년 남자가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래 국회의원 장경순이란
이름이 선명했다.
난 국회의원이란게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검색을 해보니 1922년생으로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군에서 예편해 공화당 5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부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22년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나이로 101세를 산 것이다.
쿠데타 성공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조한백은 김제 조씨로 제헌의원이다.
일제감정기엔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해 소학교 교사 노릇을 하였고 해방이 되어선
극우신문인 대동신문 전북지사장을 지냈다.
4선 의원으로 줄곧 야당에 몸을 담았다.
1960년 민의원 선거에선 독립운동가였던 정화암과 경쟁해 이겼다.
장면 정권 아래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름이 멋있어 기억에 오래남는 이름이다.
독립투사 정화암.
1960년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자금력과 조직력을 앞세운 조한백에게 완패.
이후 진보적 소수야당인 통일당에 몸담으며 정치 활동을 했다.
하지만 출마하진 않았다.
1981년. 눈감기 얼마 전 정화암 회고록을 썼다.
무소속 김택하.
어느날 학교 정문에서 양복차림의 남자 두엇이 책받침을 나누어주었다.
책받침엔 국회의사당과 김택하 얼굴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그 때가 1978년 12월이다.
1973년 무소속으로 당선 되었고 재선에 나섰는데 낙선했다.
고려목재주식회사 회장이라 했으니 돈이 좀 있었나보다.
돈있으면 권력과 명예도 얻고 싶은게 인지상정.
최낙도 3선의원이다.
검색해보니 장경순 의원의 비서관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소키우던 양반이란 소릴 들었다.
울 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누며 지냈던 사이였던듯.
동생이 낙도양반이라고 하여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정치를 하다 가세가 기울어져 행상을 하기도 했단다.
내고향 김제에서 활약했던 근현대사 인물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써보았다.
김제에 살고 계신 분들이 댓글로 내용을 추가해줬음 좋겠다.
202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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