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선생, 임진왜란때 끌려간 분들 땜에 몸으로 울었다>
ㅡ 일본에 뺏긴 도자기 기술, 조선 침략의 발판이 되다 ㅡ
1. 임진왜란때 일본이 사기장들을 대규모 강제연행
임진왜란전까지 일본의 도자기 제작수준은 조선에 비해 휠씬 낮고 자체적인 기술이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계획하며 문화재약탈 전담부서(공예부)를 따로 만들 정도로 조선의 도자기기술과 사기장*(沙器匠, 도공)을 탐냈다.
*사토 등으로 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0년동안 강제 연행된 사기장들은 3만명이상(전체의 90%)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이후 조선 사기장의 영향으로 일본 도자기는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고, 유럽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반면 사기장이 사라진 조선은 도자기 생산력이 크게 떨어져 광해군이 명나라 사신 접대 잔치에 주둥이가 깨지고 뚜껑도 없는 꽃병 2개를 올려 놓았다.
조선의 기술 천시의 성리학 탈레반들은 도자기 활성화 의지가 없었으며 사기장 대우도 형편없어 1697년(숙종) 국가 운영 도자기분원에 소속된 사기장 39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2. 일본은 사기장 대우 극진, 조선 귀국 거부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사기장들은 살다보니 자신들에 대한 대우가 조선에서보다 훨씬 나음을 알게되었다.
조선에서 살 적엔 천민("점놈"이라 불렀다)으로 온갖 설움을 받고 착취당하며 살았지만
일본 다이묘들은 예술작품으로 취급해 주며 호의를 감추지 않았으며 이들의 기술과 신분을 보호해 주었다.
일부 조선 사기장들을 사무라이 수준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왜란이 끝난 후 조선에서 사절단이 와서 귀국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때 이들 상당수가 귀국에 적극적이지 않고 일본에 남고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3. 도자기 판 돈으로 메이지 유신과 대포구입, 다시 조선 침탈
조선 사기장들은 다이묘들의 극진한 대우와 열의에 보답하고, 또 엄청난 연구를 하여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 댓가로 다이묘들은 그 도자기를 유럽상인들에게 비싸게 팔아서 거부를 축적했다.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이유도 메이지유신의 주역이었던 조슈와 사쓰마번이 도자기 밀무역으로 많은 자금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도자기를 판 돈으로 서양대포와 군함을 구입하면서 급속도로 군사대국으로 발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한론을 부르짖으며 조선을 침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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