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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할머니 제삿 날

by 만선생~ 2023. 10. 22.
 
추석 전 날이 할머니 제사다.
1945년 음력 8월 15일 만주국 금주성 태평방에서 돌아가셨다.
나이 서른 셋.
아버지 나이 열다섯이었다.
어릴 땐 남들도 추석 전 날 제사를 지내는 줄 알았다.
할머니 제사는 명절인 설날하고 추석과 더불어 중요한 집안 행사다.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할머니 제사를 건너 뛰는 법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론 큰형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이끈다.
큰형의 가장 큰 일은 지방을 쓰는 일이다.
이어 축문(?)을 읽는데 언제부터인지 한문이 아닌 한글로 바뀌었다.
조카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큰 형의 지시에 따라 제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젠 조카들이 알아서 다하니 할 일이 없다.
군대로 치면 왕고가 되어 뒷짐을 지고 노는 것과 같다.
1945년. 만주로 이민을 떠난 우리 집은 중국인 지주에게 땅을 빌었다.
벼농사를 지었고 이앙이 아닌 직파였다.
쟁기질도 소가 아닌 말이 했다.
두 마리가 끌어 땅이 깊게 파였단다.
농사가 어마어마하게 잘돼 대지는 황금빛으로 출렁였다.
하지만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자 주저없이 고향 행을 택했다.
벼를 수확도 못해보고.
그 과정에서 지병이 있던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어린 자녀들을 남겨둔 채...
이제 곧 만주 어딘가에 묻혀계신 할머니가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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