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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보지

by 만선생~ 2023. 10. 22.
 
내용과 상관없는 이미지입니다.
보지
 
 
중학교 1학년 때다.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표적 맞추기 놀이를 하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사는 아이들이었다.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여 앞으로 뭐가 될지 정말로 암담하였다.
그에 반해 난 학교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아무리 공부가 싫어도 학교는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공터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짓궂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기가 담장 위에 있는 표적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은 빗나갔다.
한 번 던지고 두 번 던지고 세 번을 던졌으나 표적을 맞추지 못했다.
성기 동생 홍기도 계속 빗나갔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 번 던지고 두 번을 던졌으나 돌은 빗나갔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한 번 더 돌을 던졌다.
믿기지 않게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표적이 뒤로 넘어갔다.
신이 난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허망하게 아이들은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난 아이들에게 외쳤다.
" 좀 보지~"
그런데 이게 뜻하지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었던 것이다.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크게 소리쳐 외쳤기 때문이다.
음만 같을 뿐 뜻이 전혀 다름에도 킥킥대는 아이들.
남을 한 번도 웃겨본 적이 없는 나로선 신기했다.
세상에. 내가 한 말에 웃다니.
그리고 한편으론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이런 일로 웃어선 안 된다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였다.
남자 성기와 음이 같은 성기는 자신의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누군가 성기라고 놀릴 때마다 침을 뱉곤 하였다.
녀석이 한 번은 어디선가 도색 잡지를 구해와 함께 보았는데 여자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내겐 엄청난 시각적 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차마 성기의 이름을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짜식 이 거 첨보냐?”
“응”
성기는 수준 떨어져 같이 못 놀겠다는 태도로 도색잡지를 다시 품에
넣고 어디론가 휙 하니 가버리고 말았다.
2학년이 되어선 성기를 만날 일이 없었다.
반도 바뀌고 이사도 하여 어쩌다 멀리서 한 번씩 볼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난 사람들을 웃겨본 일이 없다.
어쩌다 내 말에 누군가 웃으면 그 상황이 어색해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곤 한다.
그만큼 유머감각이 없다.
작품도 마찬가지.
웃기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아쉽지만 천성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만화학과 교수가 된 누군가와 곁다리로
만날 일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도중 나는 일본말로 여자의 성기를 뭐라 하냐고 물었다.
아마도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내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말을 해주지 않았다.
괜한 걸 물어봤다 싶었고 기분이 언짢았다.
성기가 그렇듯 일본 유학을 마치고 교수가 된 그의 소식도 모른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잠깐 잠깐 만났던 인연들을 뒤로 하며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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