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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죽음

by 만선생~ 2023. 10. 21.


죽음을 처음 인식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상여 행렬을 보고 몸이 굳었다.
알 수없는 공포가 내 안에 스며든 것이다.
먼 훗날 나도 저리되리라 생각했다.
이후 무덤을 지날 때마다 죽음이 떠올랐고 무덤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쩌다 등이 굽은 노인과 마주치면 노인의 등뒤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보았다.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아서인지 살아오는동안 한 번도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죽음을 떠올리기도 싫었다.
어쩌다 죽음을 생각할 때면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삶은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임을.
어제는 산책 중 불현 듯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소멸이 두려웠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다.
그 때다.
카톡 알림 소리가 울린 것은.
들여다보니 대출이자와 원금을 몇날며칠까지 갚으라고 한다.
덕분에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실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닥칠 죽음도 두렵지만 더 무서운 건 바로 눈앞에 닥친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이었다.
당장의 생활이 힘든 사람은 죽음도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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